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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비전 묵상-29

한재욱 목사
강남비전교회

“남편은 자기 생일날 밥을 빨리 안 준다고 상을 엎어 밥상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을 새로 안 사고 석 달 동안 땅바닥에 밥을 줬더니 그 뒤로는 상을 안 엎었습니다.”
권정자 외 20인 공저(共著)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 12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때문에,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우리들의 할머니 스무 명이, 글과 그림을 배워 전시를 하고 책을 냈습니다. ‘순천의 소녀시대’라고 불리우는 할머니들은 막내가 50대 후반, 맏언니는 아흔을 바라보는데, 살아온 생을 모두 합하면 1600년이 넘습니다.


일본군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친구, 전쟁 중 피란길에 죽은 동생을 업고 온종일 걸었던 이야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멋있어 보여서 결혼했는데 짜장면 하나 사줄 돈이 없던 가난한 남편 이야기… 영어를 배울 때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헬로, 디져”라고 해 웃음 바다가 되고…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애환이 묻어 있고, 세월이 그리고 웃음과 눈물이 묻어 있습니다.


동네 오빠에게 손목을 잡힌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한동네 사는 친구 오빠가 결혼하자고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맘에 안 들었지만 손을 잡았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불쌍한 어머니’라는 글도 있습니다. “자다가 일어나 보니 엄마 혼자서 애기를 낳았습니다(중략). 엄마는 막내를 낳고 많이 아팠습니다. 옆집에서 보리개떡 먹는 것을 보고, 나도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졸랐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몸이 아파 보리개떡을 쪄주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해서 늘 미안했습니다.”


우리들의 할머니는 바람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온 몸으로 삶을 견뎌왔습니다. 글을 알지만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글은 모르지만 인생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의 어머니이신 할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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