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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1)

장희국 목사의 복음 이야기-13

장희국 목사
문화교회

동방의 나라 조선에서 평생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장기려 박사입니다. 장기려 자신은 부인했지만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모델이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던 의사였습니다.


일제치하 1928년 17세에 경성의전(서울의대) 입학시험을 보면서 “하나님 이 학교에 입학시켜 주시면 평생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몸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했고, 1932년도에 수석으로 졸업한 뒤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수술 실적을 소유한 백인제 박사 밑에서 조교로 있으면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장기려는 스승으로부터 경성의전 교수 또는 도립병원장으로 가라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제안받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평양의 후미진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치료비가 없어 평생의사 얼굴 한 번 못보고 죽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셨고 병든 자들을 기도로 고치셨는데 그는 의술로써 그리고 더 크게 인술(仁術)로써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을 심었습니다,
해방 이후 김일성의 외삼촌 강양욱이 조선기독교 연맹을 조직하고 그에 반대하는 목사들이 탄압 받던 시절, 김일성 대학에 재직하던 그 역시 북한 보위부의 뒷조사를 받지만 보위부원들이 감동할 만큼 그의 행적은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한국전쟁이 국군이 평양에 진격 할 무렵, 김일성대학 병원 근처에 떨어진 포탄에 놀란 의사들이 사색이 되어 피할 것을 청했을 때 “의사가 되어서 환자들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불같은 호령을 내려던 의사로서의 열정은 기독교를 탐탁지 않아하던 공산주의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긴박한 전쟁통에 그의 아내와 여섯 아이를 북에 남긴 채 둘째 아들 하나만 데리고 월남해야 했습니다. 이윽고 그의 외롭지만 의롭고, 고되지만 거룩한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1951년 1월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워 전쟁과 가난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고쳐준 것은 그 시초였습니다.


“무엇보다 잘 먹는 게 중요합니다. 꼭 잘 먹어야 해요.” 의사의 신신당부를 들은 환자는 의사가 써 준 처방전을 들고 원무과로 갔습니다. 그런데 원무과 직원은 그 처방전을 보고 입을 딱 벌렸습니다. “이 사람에게 닭 두 마리의 값을 주고 보내시오.” 환자에게 돈 받을 생각보다는 돈 줄 생각을 먼저 하는 의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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