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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단의 함정인 이단경계-1

윌리엄 브랜함(Branham) 부흥사는 놀라운 신유 부흥사로 한 번은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농아를 먼저 강단 앞에 세우고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된 귀신아 떠나가라.”고 명령해 즉시 고침을 받게 됐다. 이것을 보고 오스본(T. L. Osborne) 목사는 크게 은혜받아 변화됐다고 한다.


그에게 은혜받은 큰 종을 영적 아들로 두긴 했으나 브랜함 목사 자신은 진리로부터 떠난 어떤 교리를 전개했다. 1963년대에 그는 요한계시록 11장에 있는 ‘두 증인 중의 하나’가 자신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그는 극단적인 논쟁에 휘말렸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이 때로는 어렵다.


오늘날 한국교회나 세계적으로 마지막 때에 출현한 이단경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1965년 12월 신유부흥사 브랜함은 애리조나로 가는 십자로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음주운전하는 차에 그의 차 앞부분을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운명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한 무리는 브랜함이 하나님이 될 것이고 처녀에게서 다시 탄생할 것이라고 믿었으며, 심지어 1966년 부활절에 그가 부활할 것이라고까지 기대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고, 구세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언제나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고 하며 낮추셨다. 브랜함은 왜 자신을 두 증인 중에 하나라고 하는 사설교리를 전개하며 극단적인 논쟁에 빠졌을까? 대부분의 이단자들은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받아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신비주의에서 사이비로, 나아가 이단자로 넘어가곤 한다.


신학생 시절에 나는 왜 이단자들이 생기는지 궁금해 여러 집단에 들어가 관찰한 바 있었다. 한 번은 계룡산의 오만한 이단자들을 만나 격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한 주간이나 그의 회생을 믿고 장례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들이 강제로 장례식을 거행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교회에서도 ‘감람나무, 두 증인, 자칭 예수’를 주장하며 등장한 이단자들이 출현하고 이슬처럼 사라졌으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따르는 무리들이 ‘그의 회생을 믿고 하나님이 될 것이라, 처녀에게서 다시 탄생할 것이다. 또는 부활절에 부활할 것이다’라고 믿도록 한 것은 전적으로 따르는 무리의 무지나 절대적 신봉이 이유이긴 하지만, 브랜함 부흥사의 경우에는 그가 잘못 가르친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보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갈을 때의 일이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10:25~26)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나 베드로의 이름으로 일어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높이고 그의 부활을 증거했기에 죽은 여성도 다비다를 일으켰고,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여도 병자가 낫고 더러운 귀신도 떠나간 것이다(행5:15~16). 그러나 어찌 예수님을 제쳐놓고 무릎 꿇는 경배의 절을 낚아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했는데,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시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쳤을 때 사람들은 바나바를 쓰스(제우스)라 하고 바울을 허매(헤르메스: 제우스 주신의 대변자)라 하고, 쓰스 신당 제사장이 소와 화환을 가지고 와서 제사코자 했다. 그때 바울은 옷을 찢고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14:15)하며 극구 말려 제사하지 못하게 했다. 인간이 뭔데 감히 오만스럽게 경배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한명국 목사

증경총회장, 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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