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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는 아버지 사랑

최선범 교수의 신약 원어 산책–4

최선범 교수
침신대 신학과
신약학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일명 탕자의 비유의 주인공은 작은 아들도 큰 아들도 아닌 아버지이다. 자식을 향한 애절한 아버지의 모습은 백지에 도장처럼 선명하게 찍힌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면 또한 보고 만질 수 없는 하늘 아버지의 모습(형상)이 투영되어 있음을 보고, 아버지의 성품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기막힌 사랑이 우리에게 스며들어 온다.


그럼에도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 상은 우리가 원하는 아버지 상과는 사뭇 다르다. 어린 자녀가 원하는 아버지는 위기의 순간마다 구출해 주는 힘센 슈퍼맨(Superman)이나 언제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멕가이버(MacGyver)이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우리의 예상을 빗겨간다. 그는 초인적 영웅도 권위적인 아버지도 그저 평범한 아버지도 아닌 무력하고 나약하고 무능한 한 아버지에 불과하다.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 아버지 상과는 더욱 멀어 보이는 듯하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물려받을 수 있는 유산을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해 줬다. 작은 아들은 몇 날이 안 되어 아버지의 재산을 현금화하여 도주했다. 아버지는 정말 아들의 탈출 계획을 몰랐을까? 알았다면 왜 아버지는 아들을 꽉 붙잡지 못하고 보냈을까? 만약 종이라면, 붙잡아 놓을 수 있지만, 아들이기에, 아들이기 때문에 가로막지 못한 것이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점철된 재산을 흩뿌리고 자신의 인생마저도 탕진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 살고자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죽음의 끝이 칼날처럼 아들의 목숨 가까이에 와 있는데도,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많은 종들과 품꾼들 중에 한 두 사람 보내 아들의 소식을 들었을 법도 한데, 왜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는가? 종이라면 강압적으로 끌고 잡아올 수 있지만, 아들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아들을 아들로 인정하기 위해 아들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 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매일매일 수시로 마을 어귀에서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린다. 도덕과 윤리 불감증에 중독된 많은 현대인들과는 달리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명예와 수치가 삶과 죽음을 결정할 만큼 중요했다. 형이 아버지에게 동생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한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30). 형의 말투 속에 동생에 대한 그 동네 사람들의 여론이 내재되어있다. 산 아버지를 죽은 아버지 취급하고 재산마저 거덜 낸 인생 실패자, 동생은 한 집안만이 아니라 온 동네의 수치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동네 어귀에서 그를 몰매질을 하여 죽인다고 누가 말릴 것인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시간, 재물, 생명을 낭비하지 않고 매 순간 순금 같은 시간을 사서 값진 인생을 살았노라고 장담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보다는 사는 날만큼 쌓아 놓은 죄 꾸러미를 끌고 천국의 문 앞에 이르지 않을까?    


무력해 보였던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전혀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우리는 용솟음치며 오르는 아버지의 초월적인 힘에 압도당하게 된다. 제1부정과거 수동태, evsplagcni,sqh(에스프랑크니스쎄, 측은히 여겨지었다)은 아버지의 격한 감정 상태를 나타낸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이 가슴(심장)에서 흘러나온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대 헬라인들은 격한 감정이 배(창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동사 splagcni,zomai(스프랑크니조마이)는 우리말 말투로 “내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보고 불쌍히 여겨 고쳐주실 때의 창자가 흔들리고 온 몸에 전율을 느낌으로 긍휼을 베푸셨다.


 아들을 보고 창자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길이 온 몸에 번진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원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한다. dramw.n evpe,pesen evpi. to.n tra,chlon auvtou/ kai. katefi,lhsen auvto,n(뛰어간 후에 그는 그의 목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위에서 아래로 입을 맞췄다. 눅 15:20). 아버지가 아들에게 달려가 입을 맞추는 모습은 마치 풋볼(football) 경기에서 쿼터백(quarterback)이 전심전력하여 공중에 몸을 달려 공을 잡고 터치다운(touchdown)을 하는 모습과 같다.


이것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사랑의 힘이고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거침없는 사랑이 투영된 극적인 장면이다. 아무리 많은 악한 자들로 둘러싸여있다 할지라도 강력한 사랑의 힘으로 얼싸안고 입을 맞추는 하나님  앞에 어느 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의 줄을 끊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은 죄의 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무력해 보이지만 은혜의 길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강력한 사랑의 폭포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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