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예전에 한 성도님이 수술을 받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 전에 기도해 드리기 위해 병원에 심방을 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수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분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분은 너무나 평온하고, 해 맑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얼마나 마음이 평안하고, 담대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과 근심을 제거해 주셔서 수술에 잘 임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말씀을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떻게 돌에 맞아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그토록 여유롭게 기도까지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고,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스데반의 몸과 마음을 신비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니엘서 3장 말씀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뜨거운 불 속에서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세상의 지식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와 같은 기적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4장 29절을 보면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이런 일을 가능케 하신 것입니까? 성령이 역사하시니 사람 몸이 한순간에 낙엽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게도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일상생활 속에서 성령님께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 있다면, 새벽에 성령께서 기도하라고 저를 깨워 주실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것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몸으로 변화시켜서 말입니다. 그와같은 날은 대부분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있거나 은혜가 있는 날입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무릎 꿇고 기도하는데 오른쪽 무릎에 이상 징후가 보이더니 한 달이 지난 다음에는 오른쪽 무릎을 꿇을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 보시더니 “퇴행성 관절염이 왔는데 이것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본당 강대상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두 발을 뻗고 앉아서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옛날에 왕 앞에 있던 신하들은 늘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상례였는데 제가 어찌 하나님 앞에 평생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제 무릎을 고쳐주세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늘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잤는데 그날 아침에 일어나니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셔서 지금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지금도 우리 곁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최근에 성령님께서 저의 신앙의 상태를 보여주시고 또한 지향해야 할 점을 가르쳐 주신 내용을 전하고자 합니다. 어느 새벽기도 시간에 성령님께서 저에게 천국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저가 언덕 위에 서서 그 언덕 너머로 펼쳐져 있는 천국의 경이로운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큰 울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치 댐의 수문이 열림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적인 소리를 내면서 물이 터져 나옴과 같이 말입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격해서 우는 눈물이 아닌 다른 의미를 지닌 눈물이었습니다. “이젠 끝났구나!” 하는 마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산악인처럼 말입니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기 전에 터져 나온 눈물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앞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천국을 바라보면서 울며 크게 외치기를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이뤄 놓으신 것입니다”라는 고백의 말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는 연거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씀만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성령님.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제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님과 더불어 온전한 삶을 바로 살지 못한 데서 나온 부끄러운 고백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성령님과의 관계를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됐고, 훗날 천국에 가면 위와 같은 고백을 드리지 않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의 교훈을 배우게 됐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남은 생애를 성령님과 연합해 살기 위해 온 맘을 다해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