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침례교역사-10 침례교 창시자 존 스마이스(2)

침례교 창시자 존 스마이스는 처음부터 청교도 주류 교회론인 장로교주의를 반대하고, 회중교회주의와 영성주의를 강조하는 교회를 추구하였다. 그러던 중 1609년 초, 성공회와 청교도들이 충격을 느낄 일을 결행했는데, 그것은 유아세례를 부인하고 믿음을 고백한 성인에게 침례를 실시한 일이었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이유는 스마이스가 가까운 곳에 있던 워터랜더 메노파교회의 침례 행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스마이스는 성인 침례를 이단적인 행습으로 생각했으나, 침례를 연구하면서 신자의 침례가 성서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스마이스와 게인스보로 교인들은 전에 받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신앙고백에 근거한 침례를 받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신자의 침례를 받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스마이스는 신앙고백을 하고 스스로 자신에게 관수 형식으로 침례를 행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관수로 침례를 베풀었다. 드디어 최초의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스마이스는 1609년에 쓴 짐승의 특성’(The Character of the Beast) 이라는 책에서 유아세례는 교회를 성도와 불신자가 혼재된 공동체로 만들어 적그리스도적인 교회가 되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아들은 회심할 수 없으므로 교회회원에 포함되거나 침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성공회와 청교도 모두 유아세례를 정당한 성례로 인정하던 때였기 때문에, 스마이스와 게인스보로교회의 결정은 매우 큰 파장을 불러왔다. 성공회는 가톨릭과 유사하게, 아기는 세례 받을 때 새로운 본질을 받아 교회에 일원이 되므로, 모든 아기는 부모의 신앙과 무관하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세례가 구원과 연계되어 있는 성공회에서 아기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청교도들은 칼빈의 언약신학에 근거하여 유아세례를 옹호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언약은 자손을 포함하고 언약 공동체의 아이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확증한 것처럼, 신약시대 신자의 자녀는 할례대신 유아세례를 통해 언약의 증표와 인증을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교도들은 이처럼 교회를 신자의 자녀들이 포함된 언약공동체로 봤고, 유아세례는 언약공동체에 들어가는 출발로 믿었다. 성공회와 청교도들은 유아세례를 부인하는 것을 이단과 분파주의로 간주했다.

 

스마이스는 암스테르담의 망명 영국 교회들과 본국의 교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됐다. 신랄한 비판과 공격은 스마이스로 하여금 메노파교회를 긍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그는 메노파교회만 참된 침례를 계승했기 때문에, 메노파교회에서 다시 침례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스마이스는 교인들에게 자신이 베푼 침례는 적법한 계승이 결여된 침례이므로, 메노파교회에 가입해 다시 침례를 받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헬위스를 비롯한 10여명의 교인은 격렬히 반대했으나, 다수 교인들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1610년에 스마이스와 42명의 교인은 워터랜더 메노파교회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워터랜더교회는 스마이스 그룹을 흔쾌히 받아들이려 했으나, 다른 메노파교회들이 신중히 결정하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헬위스 그룹도 방해 작업을 펼쳤고 이런 이유들로 워터랜더교회는 5년이 지난 1615120일에 이르러서야 스마이스 그룹을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스마이스는 1612820, 가입 과정이 진행되는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

 

워터랜더교회는 스마이스가 행한 침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 새로 가입한 영국인 교인들에게 침례를 베풀지 않았다. 스마이스 그룹은 메노파교회에 흡수 통합되어 침례교회와 관계가 단절됐고, 휄위스 그룹이 일반침례교회를 이어 나갔다.


김용국 교수 / 한국침신대 신학과(교회사)



총회

더보기
증경총회장 지덕 목사, 총회에 카니발 차량 기증
우리 교단 30대 총회장을 역임한 지덕 목사(강남제일 원로)가 지난 2월 11일 총회(총회장 최인수 목사)에 카니발(하이브리드) 승합차를 기증했다. 지덕 목사는 “그동안 총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헌신이 차량 기증이 되는 것 같아 이번에 사재를 털어 기증하게 됐다”면서 “총회가 3500여 침례교회를 다 방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왕이 민의를 듣는 것처럼 총회장으로 동역자들이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 우리 교단은 반드시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최인수 총회장은 “지덕 증경총회장의 마음이 이 차량에 담겨 있기에 총회가 교회와 목회 동역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총회가 돼서 변화와 희망을 이뤄내는 115차 총회가 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덕 목사는 65차 정기총회에서 30대 총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1975년 9월부터 1976년 8월까지 교단을 대표해왔다. 또한 지 목사는 1998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6대 대표회장으로 한국교회에 침례교 위상을 높이 세우는데 이바지했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법인 이사장, (사)기독교한국침례회 미래포럼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