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바라보는 2가지 관점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세계보건기구 WHO와 선진국들의 싱크탱크 및 글로벌기업 CEO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쉽게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과학을 믿으니까요!’라는 말은 지난 12월 14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백신 접종을 받은 여성 간호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매일 코로나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치료해야 하는 뉴욕 병원 간호사로서 제법 두려울 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강력한 신념의 근거가 과학이었다. 과학과 의술을 믿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과학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전진한다는 매우 인본주의적인 사상이 이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고난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은 최소한 신앙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세상은 신앙이나 믿음보다는 과학이나 정보가 더 중요한 듯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이 많이 죽을수록 신앙이 성장한 것이 아니라 문명이 한 차원 발전했다.
사실 팬데믹의 원조는 흑사병이다. 14세기 유행한 흑사병은 단 6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인 25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전체 전염병기간 동안 무려 2억 명에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프랑스 파리에서 하루에 800명, 오스트리아 빈에는 600명씩 죽었다고 한다. 오늘날도 전염병이 두려운데, 걸리면 3~4일 만에 빠르면 6시간 만에 죽는 이 전염병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공포와 두려움을 주었겠는가.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무서운 전염병을 이겨내기 위해 교회에 모여 구원을 기도하고 길거리마다 성모 마리아상을 세웠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전염병 앞에 무기력했던 교회의 권위는 흔들리고 새로운 인간들의 시대가 열린다.
바로 르네상스다. 문예부흥운동, 문화혁 신운동이라고 정의하지만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 사상이고 과학 혁명이다. 이때 이후부터 신앙은 비이성적인 것 혹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종교를 아편으로 여기고 정신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시도까지 생겨났다. 결국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면서 인간들은 방법을 찾고, 전염병 극복의 경험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능력을 더욱 확신하게 하는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도약이 생길 때마다 필연적으로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요즘은 ‘뉴노멀’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표준’이라는 뜻의 ‘뉴노멀’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등장한 새경제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 이후 세상은 이전과 분명히 아주 명확하게 달라질 것이고 새로운 기준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우리 삶은 시장보기, 인사하기부터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온라인 예배가 기본이고 교회 출석하는 것은 옵션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코로나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등장할 것이고, 교회 역시 이 새로운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몇몇 학자들은 탈세계화가 가속되어 지역 문화 중요하게 되고, 효율성보다는 신뢰성이 중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소비행태가 변화되고, 디지털화가 매우 빠르게 시작되어 신속한 언택트 사회(인간이 만나지 않고 일하거나 노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도 한다. 반면 유흥을 위해서는 코로나 3단계 규칙 정도는 쉽게 어길 수 있는 욜로 문화(YOLO, You Only Live Once)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등장할 수도 있다. 어느 것도 만만하지 않은 목회현장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교회에 입장에서 언택트 사회는 매우 언짢은 세상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전과 다르게 더욱 세밀하고 전문화된 커뮤니케이션과 목양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수는 없어야 한다. 비록 뉴노멀과 언택트 사회가 목회 환경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고, 강자만이 생존하는 목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 되더라도 미리 연구하고 준비한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언택트 환경 속에서의 목회현장에 대한 고민을 같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궁인 목사 휴스턴새누리교회. 코스타(COSTA)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