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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음 받는 사울(삼상9:1~10:1)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10

 

왕을 세워달라는 것이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요구를 수용하신다(8:10~19). 끝없는 사랑 때문에 내리신 하나님의 통 큰 양보가 돋보이지만 그 허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이기도 했다. 먼 훗날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13:11)라고 하신다. 결국 이스라엘의 신정(神政) 정치는 막을 내리고 왕정(王政)이 시작된다.

 

헤매던 사울

사울의 첫 등장은 좀 예상외다.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가문인 기스의 아들(1~2), 그렇다면 남쪽을 대표하는 유다 지파도 아니고 북쪽을 대표하는 에브라임 지파도 아닌 중립적인 인물, 이스라엘 중에 가장 작은 지파 출신이라 시기와 질투도 별로 없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 등장이 근사할 만도 하건만 아니다. 첫 등장은 헤매는 모습이다.

 

베냐민이라는 종족적 배경으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준수한 소년’, 이스라엘 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격의 준수함과 그 위풍이 화려해서(9:2,24)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9:20)가 됐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사모하는 자가장 훌륭한 자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그 잘난 사울이 헤매고 있다. 아버지 기스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헤맨 것이다. 그런데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사알림을 두루 다니고도 찾지 못하고, 베냐민 사람의 땅을 두루 다니고도 찾지 못한다(4).

 

당시 나귀는 귀족들이 자신의 위엄을 과시할 때 즐겨 타던 교통수단이라 값이 매우 비쌌는데 암나귀는 숫나귀보다 더 귀했다고 한다. 그래서 먼 곳까지 찾아 헤매다가 숩 땅, 사무엘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됐다. 본문에 이곳저곳을 다 찾아도 찾지 못했다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된다. 암나귀가 덩치가 작은가? 발이 빠른가? 아니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다, 이건 누군가가 훔쳐서 감추지 않고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성경은 사울이 암나귀가 아니라 왕권을 찾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암나귀가 아무리 비싼들 왕권만 할까? 사울이 정말 찾아야 할 것은 왕권이다.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20), 지금 사울은 나귀를 찾고 있었지만 온 이스라엘은 사울을 찾고 있다.

 

사람은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하면 헤맬 수밖에 없다. 엉뚱한 것을 좇아 낭비하는 것,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머리만 아플 일이다. 불교는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소를 찾아가는 과정에 빗대 십우도(十牛圖)라는 그림을 그렸다. 단계적인 것인데 첫 번째는 심우(尋牛), 동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고, 두 번째는 견적(見跡), 소의 발자국을 보고 찾아 나선다. 세 번째는 견우(見牛), 소를 발견하기는 하지만 뒷모습뿐이고, 네 번째는 득우(得 牛), 소를 붙잡는다.

 

다섯 번째 목우(木牛), 길들이고, 여섯 번째는 기우귀가(騎牛歸家), 드디어 소의 등에 타고 피리를 불면서 귀가한다. 그런데 일곱 번째 망우존인(忘 牛存人), 소는 온데간데없고 동자만 조용히 앉아 있고, 여덟 번째 인우구망(人牛俱妄), 사람도 소도다 잊는다. 모든 것이 무()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홉 번째 반본환원(返本還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고, 열 번째는 입전수수(入廛垂手), 가계에 들어가 손을 내민다.

 

중생을 계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사울이 헤매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나서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십우도와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사울은 지금 온 이스라엘이 찾고 있는 사람, 더 이상 암나귀 때문에 헤매며 낭비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부터 찾아야 한다.

 

사무엘을 만난 사울

암나귀를 찾지 못한 사울은 돌아가려고 했다.

아버지가 걱정하실까 두렵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 외의 일이 또 벌어진다. 사환이 막는 거다. 말이 되나? 사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7)고 했는데도 사환은 자기에게 돈이 있다며 또 재촉한다. 이 정도면 사환의 오버,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사울은 사환의 말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성읍으로 간다(10).

 

하나님의 사람’, 성경은 사무엘을 그렇게 불렀 다. 그는 백성을 인솔해서 전쟁을 치른 군사 지도자이자 순회하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 지도자인 동시에 미스바 들판에서 백성을 회개하도록 촉구한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말씀의 도구로 쓰시던 때, 성경은 그를 선견자라 고도 했다(19). 사울이 지금 암나귀를 찾기 위해 사무엘을 찾아가고 있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다.

 

마침 우물가로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난 사울은 사무엘의 행방을 묻는다. 소녀들은 바람 같은 분이지만 오늘 예배가 있는 날이라 성읍에 오셨다고 빨리 가보라고 한다. 드디어 사무엘을 만난다. 그동안 헛고생하며 힘들었는데 낭비가 아니었다. 그 헤매던 시간들은 사무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 니”(16),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오기 전날 밤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도, 쉽게 찾지 못하고 헤맨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攝理)였다는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 인생에 낭비는 없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만나 해야 할 일까지 미리 다 말씀하신다.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16). 왕정 제도를 반대하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사울을 왕으로 세우려 하신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져주는 것, 속이 상해서 다시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분노하시던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겠다며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신다. 마치 인간이 망쳐놓은 정원을 다시 수리하는 정원사 같으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았고, 끝까지 왕정 제도에 반대하시지도 않았다. 결국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헤매고 있던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신다. 차선 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간 것 같고, 또 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찾은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이 사울을 찾으셨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이다.

 

인정받는 사울

사울을 왕으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차선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기도 하다. 사무 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10:1). 기름은 번영과 권능과 정결을 상징하고, 기름 부음은 사랑의 표현이며 축복의 사인이자 권위의 상징이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것이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 그렇다면 이 기름 부음은 엄청난 영광이다. 두 번째 왕이 된 다윗은 주께서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라고 고백했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133:2)라고 노래했다.

 

구약에 보면 기름 부음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만 받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사무엘과 사울 둘만 은밀하게 치른다. 왕을 세우는 일이 영광이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윗도 사울이 왕위에 있는 동안에 그의 집에서 사무엘로부터 은밀하게 기름 부음을 받는다. 심지어 북왕국의 예후는 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제자에 의해서 골방에서 은밀하게 기름 부음을 받는다.

 

기름 부음은 영광인 동시에 사명, 또 희생일 수도 있다. 왕이 되는 것보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기에 백성을 섬기는 그 희생의 자리에 세우기 위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예수님도 선한 목자로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며 양의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하신다.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영광으로 아는 것은 물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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