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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승승장구하다(삼상18:1~30)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19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는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설적인 인물이 었다. 도산 위기라는 재앙의 문턱에 있던 크리아슬러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20세기 경제의 신기원을 이루어냈던 최고경영자, 재임기간 중반 즈음에는 크라이슬러의 시장을 2.9배까지 넓혔다.

 

그러나 그때부터 아이아코카는 자신을 미국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CEO로 만드는 일에만 심취해 80여 개의 광고에서 자신을 스타로 부각시키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속에 산다. 지나칠 정도의 자기 선전으로 아이아코카의 개인적인 주가는 올랐지만, 크라이슬러의 주가는 급격히 추락해 결국 경영진들의 압력으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회사는 독일의 다임러 벤츠에 팔리고 말았다. 자기를 영웅화시키려다가 거인의 인생을 사는 데 실패한 것이다.

 

반면에 본문에는 자신의 업적이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겸손하게 살아 진짜 거인이 된 왕이 될 남자 다윗의 승승장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받고 승승장구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화려한 영웅으로 등장하며 큰 사랑을 받지만 사울은 계속 추락하며 외로운 외골수 인생이 된다. 본문에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왕이 될 남자와 정상에서 밀려나고 있는 왕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대조된다. 다윗은 백성들의 사랑은 물론, 주변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 최고의 친구가 요나단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울 왕의 아들이다.

 

일국의 황태자인 요나단은 일개 목동이던 다윗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골리앗과 싸우던 다윗의 믿음과 용기를 보고 감탄하면서 우정이 싹텄던 모양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했다 (1절, 3절). 그리고 다윗과 다윗의 처자를 지켜주겠다고 언약을 맺는다(3절).

또 자기의 소중한 것들을 준다(4절). 자신이 입고 있었던 품위와 권위의 옷, 군복인 갑옷도 주고, 목숨처럼 소중한 칼과 활, 그리고 가슴에 매는 띠까지 다윗 에게 준다.

 

다윗을 친구로 삼은 요나단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아버지의 미움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마다 그의 앞을 가로막 는다. “어찌해서 다윗 편이냐”고 아버 지가 통탄할 정도, 그래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되기까지 했다.

 

물론 일방적 사랑은 아니다. 나중에 요나단 죽음의 소식을 들은 다윗이 부른 애가를 보면 다윗도 요나단을 그렇게 사랑했다.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 한 사랑’이라 했다 (삼하1:26). 이걸 동성애 코드로 연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다. 구약성경은 철저히 반동성애적 성향을 보인다. 우정을 뛰어넘는 사랑이었다는 뜻, 마치 다른 형태의 연애감정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그만큼 서로 사랑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요나단은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윗의 생명을 아꼈고 위험에서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다윗이 역부족일 때 요나단이 없었다면 다윗은 정말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저들의 마지막 헤어지는 모습을 보라. 정말 눈물겹다.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삼상20:41) 왕조의 후계자와 그에 대적하는 경쟁자?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 했다. 심지어 다윗은 나중에 왕이 된 후에도 죽은 절친 요나단의 아들 장애인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대우해주고 그의 생명을 보호해준다.

다윗 주변에는 요나단 외에도 사람이 많았다. 사울의 딸인 미갈도 다윗을 사랑했다. 또 성경은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사랑했다고 한다(16절).

사랑받고 지지받는 것이 권력 아닌가?

 

우리는 관계성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소위 인맥이라고 부르는 힘, 그 힘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다.

석유왕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어떤 능력보다 사람 통솔하는 능력에 가장 높은 연봉을 지불할 것”이라 했다. 지식이나 전문성보다 인간관계, 다윗은 사랑받는 인간관계 때문에 승승장구했다.

 

위기 속에서 승승장구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여인들은 소고를 치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 다”(7절)라며 찬양했다. 다윗이 영웅이된 것이다. 그런데 사울 왕은 이 일로 자존감을 상실하고 위기를 자초한다.

 

매력남, 몸짱에 얼짱, 마음짱이기까지 했던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두려움이 생기고, 질투가 시작된 것이다(8절). 자기 체면이 구겨졌다고 화병이 났다. 전혀 왕답지 못하다. 그냥 예쁘게 보고 품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그런데 ‘그날 이후’ 사람이 달라진다(9절). 영어성 경에서는 ‘jealous eye', 질투와 의심의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질투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슬퍼하는 것”이라 했는데 사울 왕은 질투심 때문에 품기는커녕 배척하고 제거하고 했다. 반역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18절에는 다윗을 두려워했다는 말이 반복된다(12, 15절).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게 오히려 다윗을 더 키워주고, 다윗의 승승장구를 도와준 셈이다.

 

장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영웅됐더라도 질투하고 대노할 일이 아닌데 어린 소년을 질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요나단이 라이벌 의식을 가졌다면 이해가 되지만 사울 왕은 아니다. 왕이라면 장군이든 소년이든 예쁘게 봐줄 일이었다. 그런데 포용력이 없다. 포상으로 장수 삼을 때까지는 나름 포용한 것(5절) 같았지만 거기까지, 아들 요나단보다도 한참 어린 다윗을 경쟁자로 여겼다. 쪼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질투가 미움으로 바뀐다. 사사건건 다윗을 적대시하고 부딪친다. 큰 딸을 다윗에게 주려던 생각도 접고 어떻게든 다윗을 그싹부터 밟겠다고 난리친다. 20장까지 집요하게 다윗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 병적인 질투심의 노예, 미쳤다고 봐야할 것 같다. 6번이나 다윗을 죽으려 했으니 도대체 지도자의 품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사울이 다윗을 포용했다면 얘기가 달라지고, 그의 왕위가 오래 갔을 수도 있고, 왕조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핍박하고 죽이려 하니 결국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만 준 셈이다. 반면에 왕이 될 남자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위 찬탈자라는 오명을 쓰지 않았으며 온 지파의 추대로 사울이 죽은 이후 통일왕국의 왕이 된다. 속 좁은 사울 왕에 비해 다윗은 대인이었다. 사울의 질투심은 악령의 역사로 이어졌다(10절). 상처를 교두보로 삼고 악령이 역사한 것이다.

 

질투는 통제가 가능하지만 악령의 역사는 통제 불능, 결국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 한다. 다윗을 향해 두 번이나 창을 던졌다. 19장 10절에 보면 또 창을 던졌다. 그의 행동은 광기, 완전히 눈이 뒤집힌 꼴이다.

 

지혜롭고 겸손하게 승승장구

다윗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기름 부음 받은 게 무슨 의미였을까?‘ 의심될 만한 상황, 차라리 그냥 목동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위기를 지혜롭게 이겨낸다.

14절과 15절에 ’지혜롭게 행했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에 사울은 이런 다윗이 두렵다. 하지만 다윗은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30절에 ’지혜롭게 행했다‘는 말이 또 나온다. 위험이 있으면 피했고, 필요한 곳에서는 능력을 다하여 일했다.

 

자기의 설 자리를 알았던 것,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았다. 그게 지혜다. 다윗은 또한 겸손했다. 왕의 부마 자리를 덥석 받지 않았다. 사울의 첫째 딸 메랍을 아내로 주려할 때 다윗은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18절)라고 했고, 다른 딸 미갈을 주려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23절). 마치 권력에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사실은 이미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될 남자. 중요한 건 미리 설치지 않은 것이다.

 

드러내 지도 않았다. 겸손이다. 다윗은 하나님 손에 맡기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자기 일에는 성실했고, 능력있게 감당했다. 사울은 다윗에게 부마가 되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 포피 100개를 요구한다.

 

지참금조로 요구한 것 같은데 여기에는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서 다윗을 죽이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기대를 뛰어넘어 200명 분의 포피를 베어 온다. 주어진 조건과 현실하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보였다. 왕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사랑받는 남자, 위기 속에서 더 커진 남자, 지혜롭게 때를 기다리며 겸손했던 남자, 그는 과연 왕이 될 남자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를 쓰셨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일 인물로 승승장구하게 하셨다.

 

이희우 목사 / 신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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