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뿌리교회가 성도들에게 머리와 가슴에 박히도록 강조하고 있는 마음입니다. 지난 6년 동안 말씀 안에서 이뤄지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가 경험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있지만 교회가 이 땅에 희망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2016년 1월 17일 연고도 없는 아산에서 교회를 개척한 김진혁 목사는 이사야 27장 6절의 말씀을 근거로 교회명을 ‘뿌리교회’로 명명하고 아산의 도농복합지역의 농가주택을 임대해 2월에 설립예배를 드리고 시작했다. 천안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기에 되도록 천안교회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정한 곳이 바로 아산이었다.
모교회의 지원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던 김목사는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뜻을 기억하며 오직 복음, 오직 말씀 중심의 목회 철학을 구현하고자 몸부림쳤다.
김진혁 목사는 “뿌리교회가 세워질 때, 뜻하지 않은 섬김과 동역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이는 목회자의 성품도 중요하지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감동으로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며 “당시 교회를 개척할 때, 함께한 가족이 지금도 귀한 목회 동역자로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리교회가 탄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밝혔다.
전도의 시작 ‘붕어빵 나눔’
교회를 개척한 지역이 도심지에서 제법 떨어진 지역이고 가까운 곳에 타 교단 교회가 있는 와중에서 배방역 건너편의 상가지역을 중심으로 전도 사역을 전개했다. 그리고 상가를 공략해야 할 수단을 고민하던 중에 ‘붕어빵’ 나눔을 시작했다.
기술조차 없는 김 목사와 교회 사역자들은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붕어빵 기계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상가에 나눴다. 처음에는 잡상인 취급하며 면박을 주고 외면했던 상가 업주들도 차츰 조건 없이 나누는 붕어빵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단순히 붕어빵만을 전하지 않았다. 상가들을 돌며 일면식을 익히고 관계를 맺으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오히려 주일에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하는 상가 주인들이 “교회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우리에게 이렇게 잘 해주면 뭐하냐?”라는 핀잔도 들었지만 모두가 애정을 가지며 ‘붕어빵’을 함께 나누며 오히려 그들을 통해 뿌리교회가 위로를 받기도 했다.
김진혁 목사는 “여기저기 큰 교회에서 찾아와 도와주던 때에는 경찰 신고도 받고 상가들의 냉대도 받았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이웃을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사계절 붕어빵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눴다”면서 “그 결실로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거나 문의하고 직접 찾는 아이들, 또는 상가 업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교회에 놀러오고 상가 업주들이 교회를 응원해주고 실제로 교회에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현재는 우리가 붕어빵 전도를 하고 있던 지역에 붕어빵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관계로 임시 휴업 상태이다. 그 분들이 쉬시는 날을 잘 파악해 그 날만이라도 지역 주민들을 섬기는 붕어빵 나눔을 진행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붕어빵 전도와 함께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도 섬김과 헌신의 사역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교회 주변과 인근 지역까지의 청소와 정리 정돈은 뿌리교회 김진혁 목사의 몫이었다. 여름에는 여러 교회들의 도움을 받아 의료선교와 주민마을잔치를 열면서 교회의 이미지를 개선해 나갔다. 조용한 동네에 교회가 있는 것에 달가워하지 않았던 지역주민 어르신들도 뿌리교회의 아낌없는 헌신과 사랑에 감동하며 ‘지역의 보배’처럼 칭찬하셨다. 관계를 통한 선한 영향력은 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지역주민들에게 교회가 귀하고 선한 이웃이라는 마음을 품게 했다.
교회 이전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
지역주민에게까지도 뿌리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나타나며 교회도 활기를 찾을 무렵, 2년간 임대로 사용했던 창고 농가주택이 매매가 되면서 갑자기 교회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더욱이 코로나19가 국내를 강타하기 시작하며 전국으로 확산세가 뻗치는 상황에서 교회 이전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교회 이전의 문제는 의외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움으로 이뤄낸 하모니였다.
천석빌딩 3층을 본 김진혁 목사는 당장 계약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건물주는 교회가 임대해서 쓰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다. 설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 목사를 도운 것은 주변의 상가 사장들과 부동산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은 몇 년동안 뿌리교회의 붕어빵 나눔에 적잖은 혜택(?)을 본 이들이었고 ‘붕어빵’이라는 매개체로 관계 형성의 힘이 건물주의 마음을 움직였다. 뿌리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르다는 강력한 권고와 권유로 결국 교회 계약이 성사됐고 김진혁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교회 이전을 결정하며 인테리어와 교회 이사를 진행했다.
성도들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동역하며 물질을 모았고 인테리어에 헌신하고 교회 이사도 한날 한시에 모여 함께 했다. 뿌리 공동체라는 이름하에 전 성도들이 함께 한 하나님의 역사였다.
교회 개척 초기부터 뿌리교회 공동체는 가족이라는 끈끈함을 강조했던 김진혁 목사는 교회 모든 사역과 행사에 전교인이 함께 하는 행사를 추구했다. 누구 하나 소외되거나 빠지는 경우 없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교회 수양회, 성경공부, 주요 행사 등은 전체 교인이 자발적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형식적인 신앙과 모임보다 성도들이 필요를 건의하고 논의할 때, 모임을 주관하고 인도했다. 이는 6년 동안 성도들과 동거동락하며 몸과 마음으로 얻어낸 김진혁 목사의 목회관이었다.
김 목사는 “진정한 신앙인은 교회 일에 매이거나 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 말씀을 통해 또는 평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일어난 감동으로 행해야 하기에 신앙생활로 매몰되지 않고 말씀 안에서의 자유, 신앙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며 성도들이 살기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는데 뿌리교회 성도들이 진정으로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밝은 빛으로 맛을 잃은 맹탕과 같은 곳에 맛을 돋우는 소금과 같기를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 목회 마인드는 진리의 말씀이 변하지 않는 이상 뿌리교회의 든든한 뿌리로 박혀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토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펴서 이 땅의 구주가 오신 것처럼 뿌리교회도 아산 지역에 복음의 영향력을 깊이 심으며 지친 영혼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든든한 말씀의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교회가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아산=이송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