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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약속의 묵상-2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 대표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프랑스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봤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 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줬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눠서 세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라고 했다. 이것이 어머니이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어머니이다.

 

C.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사실상 사랑은 차원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을 헬라 사람들은 아주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 젊은 사람들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런 화끈한 사랑, 이것을 ‘에로스’라고 한다. 남녀간에 사랑, 애정이라고 하는 사랑을 이렇게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런가하면 ‘스토르게’라고 하는 사랑이 있다.


이것은 혈연적인 사랑이다. 혈연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이 부모의 사랑은 철저한 끈질긴 피로 연결된 그러한 사랑이다. 이걸 스토르게라고 한다. 그리고 친구 간에 사랑, 이 수평적인 사랑, 심지어는 나라를 사랑하든 형제를 사랑하든 친구를 사랑하든 ‘필아델피아’ 혹은, ‘필아델포스’ 이렇게 ‘필’자를 붙여서 말한다.


이것이 바로 친(親)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사랑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사랑, 절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것을 아가페라고 말한다.


그런고로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서 자라고 필로스에서 성숙되고 아가페에서 완성된다. 한평생 우리는 사랑 속에 살 뿐더러 사랑을 배우며 산다. 오늘 하루의 삶이 사랑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