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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의 배경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4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전 총회신학교 교수

2. 찰스 파햄의 성령사역 이해

1) 찰스 파햄의 목회소명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은 찰스 파햄(Charles F. Parham)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1873년 6월 4일 아이오와주의 무스카틴에서 출생해 어렸을 때부터 종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그의 회심 전인 9세 때 이미 목회의 부름을 느꼈다. 그는 4년 후인 13세 때 회중교회(The Congregational Church)에서 구원을 받았고, 14세 때 감리교회에서 평신도 전도사가 됐다. 그는 16세 때 사우스웨스턴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여기서 그는 목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그는 목회에 대한 직업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교회에 대한 흥미마저도 잃어버리게 됐다. 이때 그는 진로를 바꾸어 목회보다 의학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류머티즘 열병에 걸린 나머지 이를 계기로 자신이 목회에로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런 질병에 걸린 것이라 믿고, 만일 하나님이 이를 치료해 주시면 목회를 하겠다고 헌신한 결과 치료를 받게 되어 다시 신학교에 입학해 졸업했다. 이후 그는 19세 때 캔사스주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직원들과의 빈번한 의견 불일치로 인하여 1894년에 감리교를 떠나 성결교로 옮겨 그곳에서 범 교단적인 목회를 했다.


찰스 파햄은 1896년 사라 티스틀트와이트와 결혼해 1898년 토페카에 와서 “벧엘 치유의 집(The Bethel Healing Home)”을 설립했고, ‘사도적 믿음’The Apostolic Faith)이라는 잡지를 출판해 이를 무료로 배부하면서 오순절 메시지 전달수단으로 이를 사용했다. 1900년 후반에 찰스 파햄은 놀라운 영적 사역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들의 사역을 알기 위하여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매인주 실로아에 있는 스탠포드의 성경학교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2) 벧엘 성서학원
켄드릭은 “이 학교가 현대 오순절운동의 탄생지가 되리라고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1900년 10월 15일에는 후에 토페카에서 성경학교로 알려진 “벧엘신학교”가 설립됐다. 역시 이 학교가 사용한 교과서는 오직 성경이었으며 학생들은 약 40명의 학생들이 입학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중요한 세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첫째는 성경의 주제를 가지고 성경만을 교과서로 사용하면서 귀납적인 성경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둘째는 기도였다. 이들은 “기도 탑(Player Tower)”에서 자원한 학생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3시간씩 기도했고, 때로는 밤을 새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렸다. 셋째는 실천적 봉사였는데, 학생들은 찰스 파햄의 선교와 토페카 시민들의 가정을 방문해 전도했다. 그러다가 찰스 파햄은 1900년 12월 31일에 학생들에게 한 가지 연구 과제를 제출했는데, 이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오순절 축복의 여러 이야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때 학생들은 비록 다른 일들이 일어나긴 했으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그들이 다 한결같이 발견한 것은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방언이야말로 참된 성령침례의 성경적인 증거가 돼야 한다고 자신들의 연구결과에 대한 최종적 결론을 지었다. 그 연구결과 이후에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즉 찰스 파햄은 1900년도 가을학기의 종강이 가까웠을 때, 우리는 회개, 칭의, 헌신, 성화, 그리고 치유에 대한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이들 학생 가운데 오즈맨(Agnes N. Ozman) 양이 최초로 오순절의 필요를 확신했다. 몇 분 후에 그녀는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그녀 위에 손 얹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리는 중에 그녀는 성령으로 충만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다가 1901년 1월 3일 저녁에 한 다락방에 모두가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12명의 학생들이 성령으로 충만해 성령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으며, 이 때 방 안에 있던 수 명의 학생들이 오순절 날에 임했던 것처럼 그들의 머리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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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41차 총회 미남침례회 한인교회 총회(총회장 김경도 목사, 미주총회)는 지난 6월 13~15일 미국 LA 남가주새누리교회에서 1000여 명의 가까운 대의원과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41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미주총회는 집회(강남중앙침례교회 최병락 목사, 밴스 피트만 센드 네트워크 총재, 제프 로그 게이트웨이신학교 총장)와 선택강의 세미나, 선교축제, 청소년 축제 등을 열며 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개회예배에서 우리교단 총회장 고명진 목사(수원중앙, 사진)는 축사를 통해, “미주총회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한인침례교회의 헌신적인 협력과 노력으로 부흥하고 성장해 옴에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린다”면서 “한국 침례교회도 100만 뱁티스트 운동을 전개하며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에 미국교회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위기의 침례교회가 다시 회복되며 전도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미주총회는 교단 성장과 부흥을 위한 비전2027을 인준했으며 미주침례신문을 협력기관으로 인준하는 등 주요 안건등을 처리했다. 신임 총회장에는 이행보 목사(내쉬빌연합)가 선출됐으며 제1부총회장에는 조낙현 목사(타이드워러한인)가 선출됐다. 사진제공=미주침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