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밀턴 프리드만은 1938년 기고문을 통해 유명한 말을 남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re no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우리가 얻는 각종 편익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 개념에 익숙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세속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을 보내실 때 당시 사회 기득권층과 수많은 갈등과 논란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식일 논쟁이다. 유일신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일곱째 날 안식을 금과옥조로 받들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안식일에도 거침없이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말 그대로 ‘불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한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제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던지셨다. 창조의 사역은 안식이 완결됐고, 노동 뒤에 휴식은 필요하나, 구속의 사역은 멈출 수 없는 일임을 천명하신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거저 주시는 은혜’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세상 가운데에서도 ‘정당한 비용 지불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비약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 서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적 일상을 경험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세상도 부인하는 공짜 점심 정도로 값싸게 취급해 온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코로나의 재확산 조짐이 뚜렷한 가운데에서도 오랫동안 눌려왔던 여행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너무나도 강력하다. 세계 제2의 선교 대국답게 한국교회는 수많은 선교사들을 세계 각국에 파송했고, 교회와 단체, 개인 단위의 선교 활동 또한 활발하다. 선교뿐 아니라 교회는 코로나 중에도 확인된 대로 사회 어느 집단보다 활발한 운동성을 가진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서 사역하며 현지 교회 목회자 장로님들과 함께 한국 방문을 계획한 일이 있다. 모든 절차와 과정이 한국교회의 그것과 달랐지만, 결정판은 마지막에 있었다. 의논과 계획, 신청과 승인이 난 이후 약속이나 한 듯 진행한 과정은 ‘탄소보상 자기부담금’의 납부였다. 의무도 아니고 여행의 조건도 아니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저마다 여행 거리를 계산하고 후원처를 정하고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했다. 여행 계획에 따라 비행 구간을 입력하면 거리와 함께 발생하는 탄소량이 나오고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비용을 자발적으로 비정부기구(NGO), 환경단체 등에 기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항공사도 아직 찾기 힘들다. 개인 차원에서도 자발적으로 일상에서 법이나 제도가 요구하지 않는 탄소 배출에 대한 자기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 사회 환경운동을 주도해온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은총의 숲’ 프로젝트가 그나마 이러한 책임적 행동에 공감하는 이들의 의지로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먹고 입고 움직이는 모든 행위는 결코 공짜일 수 없다. 특별히 위기에 직면한 지구생명 공동체 앞에서는 더욱 이러한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말과 혀로만 지구와 생명을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의 재물이 사용되지 않으면서 창조세계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는 것은 시대적 허언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기후 위기 속에 오늘 내가 직간접적으로 배출한 탄소에 대해 책임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보상적 행동에 나설 때이다. 이를 통해 생명 선교,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앞에 책임 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