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경은 이러한 찬미가 가사를 반국가적 사상으로 간주해, 동아기독교 교단총부에 있던 ‘신약전서’와 ‘복음찬미’ 6500권과 서류들을 압수하고, 교단 대표 이종근 감목을 1942년 6월 10일 체포해 원산 헌병대에 구금했다. 다음날 6월 11일 증경 감목들인 전치규 목사와 김영관 목사도 구속했다. 일본 검사는 이종근에게 다음과 같이 취조했다.
문: 예수가 재림한다는데 어떤 지위로 재림하는가?
답: 성경말씀대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왕국을 건설하신다.
문: 천년왕국을 건설하면 일본도 그 통치에 들어가는가?
답: 그렇다.
문: 일본의 천황폐하도 불신시는 멸망하시는가?
답: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문: 찬미가 7장에 ‘대왕님 예수’라 했는데 예수는 천황폐하보다 더 높은 대왕인가? 그때는 일본도 망하고 천황폐하도 예수 통치하에 들어가는가?
답: 전 세계가 통일되는 동시에 예수님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문: 국체명징(國體明徵)에 위반이면 불경죄에 해당되는 것을 모르는가?
답: 신앙양심에서 답하는 바이다.
문: 단체 대표인 감목이 그렇게 답변할 때 간부는 물론이고 전 교단의 지도자들도 동일한 신조를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답: 동일한 성경으로, 동일한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 합치되는 이론일 것이다.
이종근의 답변에 격분한 일경은 전국의 동아기독교 지도자 32인을 체포해 원산구치소에 수감했다. 일경은 이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물고문을 시키며,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음식만 주는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
조선총독부 고등법원검사국은 소하 18년(1943년) 5월 24일, 32인 중 23인은 기소유예하고, 이종근, 노재천, 전치규, 김영관, 백남조, 장석천, 박기양, 신성균, 박성도 등 9명은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고등법원검사국은 다음과 같이 범죄 요지를 밝혔다.
함남 원산부에 그리스도를 절대무이의 권위자라고 숭배하고 소위 말세론에 기초해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천년왕국 실현을 기다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부정하며 나아가 황실 존중, 숭배를 모독하는 사항을 유포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아기독교 결사에 가입하고, 이 결사에 핵심 신도 [임원 신도]로써 그 목적 수행을 위하여 각종 활약을 했다.
조선총독부 고등법원검사국은 동아기독교 사건을 조선중대사상 사건으로 취급했다. 재판 결과 수감됐던 전치규 목사는 1944년 2월 13일, 57세의 일기로 옥중에서 순교했다. 함흥재판소는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 신앙이 국체명징에 위배된다는 죄목으로 1944년 5월 10일 동아기독교의 폐쇄를 판결했다.
교단 재산은 강제로 압수당했고, 전국 교회들은 폐쇄됐다. 교단이 폐쇄된 후 교인 수는 급속히 감소했고 교회들은 사라져갔다. 일본에 의해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의 신앙이 반국가적 사상으로 간주되던 때에, 그러한 신앙을 고수한 것은 항일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아기독교는 교단이 폐쇄당하는 것을 불사하면서까지 복음주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항거했다.
일제 강점기 펜윅과 대한기독교회가 실행한 항일활동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교단은 펜윅의 비정치적 신앙의 영향으로 영혼구원에 주력하고, 조직적인 항일운동이나 독립운동을 펼치지 않았고, 초교파적인 민족운동에도 소극적 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그럼에도 펜윅과 대한기독교회 는 일제의 통치에 항거하는 활동을 한 사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셋째, 그들이 일제에 항거한 기준은 애국주의와 더불어 성경주의, 신앙의 자유와 정교분리 등 복음주의 신앙 원리였다는 점이다.
대한기독교회의 항일활동의 구체적인 예로는, △을사늑약 체결 직후인 1905년 11월 19일 장로교, 감리교와 더불어 교단연합구국기도회를 개최했고, △1906년 펜윅 작사의 애국가를 교인들에게 보급했으며, △1916년 “포교계” 제출을 거부해 수난을 받았고, △1930년대 신사참배를 지속적으로 반대하여 박해를 받았으며, △1944년 교단폐쇄를 불사하면서까지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 신앙을 고수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대한기독교회는 이처럼 성경적 진리와 복음주의 신앙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되거나 타협될 수 없다는 믿음과 사명으로 일제의 반기독교 정책에 대해 항거했다. 대한기독교회는 성경적 복음주의 신앙을 지키는 방식으로 항일활동을 했다. <끝>
김용국 교수
한국침신대 신학과(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