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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성령사역(2)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 - 19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전 총회신학교 교수

2) 사도행전 2장 1~4절에 나타난 성령이해
존 헤딩은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섬김을 위해 믿는 자들을 하나의 침례 안에 연합시키고 그들을 교회의 지체로 만들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인간을 향한 섬김으로 이끌어가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그들을 갖추기 위해 주어졌다고 주석했다. 나아가 그는 성령침례가 연합과 교회의 지체로 만드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도행전 2장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라는 말씀을 강조해 이는 믿는 자들이 한 성령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삼고 성령께서 제자들이 있는 그 온 집 안을 가득 채우신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의 침례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사도행전 2장 1~4절에 나타난 방언이 과연 성령침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성령충만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규명을 필요로 한다. 누가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증언했다(행 2:1~4). 여기서 “홀연히”라는 말을 통해 그것이 점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준다. 그리고 “하늘로부터”라는 말은 성령의 기원이 어디인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누가는 분명히 “각 사람 위에 임하였고”라는 증언을 통해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사도행전에는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성령의 충만한 은사가 그냥 지나쳐 버렸다는 어떤 기록도 없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충만케 함이다. 이것이 애초부터 사도행전 증언이다. 성령께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에게 오셔서 친숙한 언어를 사용하시고 충만케 하신다. 그는 오셔서 결과를 일으키실 뿐만 아니라 직접 내주하신다. 단순히 방문하기 위함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그가 계시는 곳은 완전하게 계시지 부분적으로 계시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교회의 체험 속에 존재할 것이라는 그 어떤 지적도 없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를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오순절 날 성령강림 시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가 있었다. 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에게 임했다. 구약에서 바람은 흔히 성령의 상징이었다. 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람은 부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처럼(요 3:8), 성령의 임재 또한 이와 유사하게 어떻게 언제 임했는지 파악하기 힘든 것임을 뜻한다. 또 불의 혀(Tongues of Fire)라는 표현 역시 시각적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함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성령 임함과 동시에 성령충만을 받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모인 무리들이 말한 방언은 12개 이상의 방언이었다. 오순절 방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방언과는 구별되는데, 이는 그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각의 다양한 언어로 들려졌기 때문이다. 일반적 방언이 통역 없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것에 비해(고전 14:13, 19) 통역 없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오순절 날 성령충만과 이에 따른 방언체험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존 헤딩은 오순절주의나 신오순절주의가 강조하듯이,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방언은 성령침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에 의한 것인데, 이는 성령의 내주와 달리 성령충만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행 4:31). 그는 충만이란 믿음과 영성의 상태에 관련된 것으로써 하나님의 활동에 굴복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충만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4절에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충만에 의한 결과이지 성령침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놀라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새 술에 취했다고 하는 등 그 반응은 각각이었다. 이에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통하여 성령의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고 있다(욜 2:28~32). 그 후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선포했고, 비로소 이때 3000명이 침례를 받고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됐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시작이었다(행 2:38~41). 나아가 누가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시작된 초대 교회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사도행전 서두는 분명히 누가복음의 후속으로서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 복을 전파하는 내용이며, 또한 성령께서 통치하시는 새 시대의 예고로서 일단락됐다. 즉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에 대한 예수의 약속이 성취되고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도달하는 성령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하나님의 구원사(Heilsgeschichte)를 그린 것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예수의 최후 지상 명령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명령에 따라 사도행전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요 20:2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성령이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언급되어 있다(행 1:4, 5: 눅 24:49). 이 점은 누가가 예수의 사역이 그의 승천으로 인하여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를 통해 예수의 사역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바로 중생한 이후에 제2의 은혜로서 성령침례를 받아야 성결하고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잘못됐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령침례를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요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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