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self)’라는 단어는 그 의미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프로이트는 자아(ego)와 초자아(id)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심리학자 도널드 우즈 위니컷(Donald Woods Winnicott)은 본능(id)과 자아(ego)를 합친 의미로 ‘자기(self)’를 사용한다.
위니컷은 어린 시절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유년 시절에 부모로부터 내리 사랑을 받아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할 수 있는 자아경계선이 분명해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성숙한 자기(mature self)가 발달했고, 이것이 위니컷의 거짓자기(false self)가 됐다. 겉으로는 어른스러웠지만 심리적으로는 위축되고 공허한 느낌을 갖게 됐고, 이후에 위니컷은 이러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참자기(true self)를 찾을 수 있었다. 참자기는 감정이 오염되고 공허한 거짓자기가 치유되어 건강한 감정과 실제 살아있는 자기를 느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 자기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과 이웃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상처 입은 자신의 내면 아이의 치유를 통해 거짓자기에서 참자기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리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자기에 대한 이해에 대해 알아보자. 나는 많은 글들을 기고하며 역기능적인 관계가 형성하는 거짓자기의 폐해가 죄된 형태와 중독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역기능적 관계를 강화시켜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것에 대해 말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내면 아이 치유와 가족이나 대상과의 관계치료를 통해 순기능적인 관계로의 회복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거짓자기가 치유를 통하여 참자기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말씀을 대할 때도 거짓자기(상처가 치유되기 전)였을 때와 참자기(상처가 치유된)였을 때 말씀을 순수하게 믿고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내가 거짓자기와 참자기 사이에 어느 정도에 위치해 있는가를 살펴보고 아래의 말씀을 읽어보기 바란다. 현재 자기의 모습이 거짓자기 쪽에 있다면 말씀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참자기 쪽에 있다면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좀 수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우열은 없다. 왜냐하면 인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그 치유의 과정, 성화되는 과정, 그리스도로 하나 되는 몸 된 교회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치유되고 성숙되어 말씀이 받아들이기 좀 쉬워졌다면 과거 거짓자기가 강했을 때를 생각하며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하고 그 시야로 말씀을 읽고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였는가를 기억해 보자. 그러면 그 당시보다 치유된(믿음이 강해진) 현재의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내면의 치유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참자기로써 쉽게 받아들이고 믿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것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히4:12)이 치유의 핵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님 따르는 일이 어렵지 않고 쉽다고 고백하는 참자기로서의 신앙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간증되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모두 사랑하는 자녀와 사랑하는 양(성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고 쉬운 일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이는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참이며, 참자기일때 가능하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0장 39절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