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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세상(1)

유수영 목사와 함께하는 창세기 여행 17

(창세기 4장 16~24절)

 

아버지 세대 잘못을 그대로 따라 한 가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또 한 번 참으시고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장면을 봤습니다. 이후 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창세기가 가인의 나머지 삶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으니 많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추측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창 4:16~17)

 

가인은 에덴동산 동쪽에 있는 놋 땅에서 살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들을 낳아 에녹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나 정착 생활을 못하는 벌을 받았으니 농사는 아니었을 테고 터를 잡아 집을 지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다만 그의 가족은 유랑생활을 할 이유가 없었죠. 아들 에녹이 태어나자 가인은 성을 쌓았습니다.


성을 쌓는 일이 혼자 힘만으로 될 리가 없으니 이 당시만 해도 가인이 꽤 큰 세력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을 쌓은 뒤 행적은 창세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유랑생활을 하면서 젊은 시절 범했던 실수를 후회하며 살았을 겁니다. 4장 23절에서 그의 5대손 라멕이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가인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던 모양입니다.


창세기는 이제 가인의 후손 시대로 접어들게 됐습니다. 가인의 후손도 번창했고 두 아들을 잃은 아담과 하와가 낳은 셋의 후손도 번성하기 시작했죠. 창세기 4장 18절부터 5장 마지막까지는 가인과 셋의 족보입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 가인과 셋, 그리고 그들 후손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족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가인의 후손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가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셋의 후손과는 달리 이름만 등장하고 수명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떤 발자취를 후대에 남겼는가가 기록됐죠. 야발은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됐고(이전에 아벨이 양을 키웠지만 죽은 이후 양치는 직업이 사라졌거나 야발에 이르러서 가축 치는 일이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일 겁니다)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만들어 음악가의 조상이 되었으며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야발의 기술은 훗날 농경과 더불어 인류의 주요 산업이 된 유목으로 발전했고 유발의 음악은 예술을, 두발가인의 재능은 청동기와 철기문화의 성장을 각각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이 걸어온 길이 곧 인류 문명의 성장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가인은 평생 유랑생활을 했지만 정착해 살았던 후손은 여러 기술을 익히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족보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문제아가 등장했거든요.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3~24)

 

아담과 가인은 죽음이라는 죄를 함께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 인류에게 죽음을 안겼고 가인은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였죠. 두 사람은 책임을 남에게 돌리거나 잘못을 숨기려고는 했어도 부끄러운 줄은 알았습니다.


자신이 옳지 못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반면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도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상처 입었음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고대 사회 규칙이 보통 당한 만큼 갚아 주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상처받은 앙갚음으로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라고 주장하는데, 하나님께서 살인을 저지른 가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죽이면 벌이 일곱 배라고 하신 말씀을 끌고 들어와 자신을 죽이면 칠십칠 배나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살인하고도 죽음으로 갚지 않은 가인처럼 자신도 형벌이 면제됐다는 주장입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이런 행동은 라멕이 비도덕적인 동시에 무신론자임을 드러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 저자가 가인의 후손이 미래 세대에 끼친 업적을 주로 기술에 관련해 설명하는 도중 라멕을 등장시켰다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문명을 아무리 발전시켰다고 해도 인간의 도덕과 논리 위에 성을 쌓은 것일 뿐 하나님 주권과는 관계없음을 드러내려는 의도겠죠. 가인 후손이 가는 길이 결국은 멸망의 길이 되리라는 부정적 시각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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