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대 김진혁 병장님 행정반에 전화 와있습니다.”
창문을 하나 열어도 초가을의 상쾌함이 느껴지는 토요일 오후, 병장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한민국 육군 오대장성 중의 하나라는 자부심으로 그 조용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보세요?”
“어, 형이다.”
“어쩐 일이야? 대한민국 해병 출신께서 전화를 다 주시고?”
형입니다. 대뜸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형이 부대로 전화를 한다? 무슨 일 있나?’
“응 특별한 것은 아니고, 너 혹시 장민경이라고 아냐?”
“장민경? 알지”
저하고 같은 학번 동기로 조막만한 얼굴에 키도 작고 수줍음을 잘 타는 그런 자매였는데, 저하고도 간단한 인사 정도는 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교육학과 97학번?”
“그렇지!”
“근데 왜?”
“아니, 걔가 좀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사람 괜찮냐?”
“아 그럼! 착하지. 나 군대 올 때까지 그 자매 얼굴 보면 한 번도 웃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 알았어. 나중에 통화하자.”
“어? 그, 그래.”
‘이거 이거~ 작업 들어가려고 하는구나’ 직감이 왔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처음이요, 마지막인 형과의 통화가 그렇게 짧게 끝나고, 형이 말한 자매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자매가 맞는지 다시 한 번 떠올려 봤습니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걸어 말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오후를 꼬박, 입학할 때부터 입대할 때까지 학교생활을 떠올리고 추적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내가 묘사했던 그 자매가 맞았습니다.
3월에 전역을 할 예정인데, 나름의 계획이 있어 복학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형은 대학원 수업 때문에 대전으로 가고, 저는 책으로 만난 어떤 목사님의 독특한 성경적 매력에 빠져 대구로 향했습니다. 새벽 5시에 자전거를 타고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면 그 개척교회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까지 함께 성경을 보고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면 대형슈퍼마켓에서 자정까지 미니트럭으로 음료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한참 그 생활에 익숙해 질 때쯤 형에게 전화가 옵니다.
“여보세요?”
“어, 나다.”
“응 왜?”
“장민경이 있잖냐. 니 생각은 어떠냐, 형수로 말이다. 니가 보기에 부모님하고도 문제없이 큰 며느리로 괜찮겠냐?”
이때는 사실, 형의 질문이 좀 웃겼습니다. 내 여자 고르는데, 무슨 형수를 찾고 부모님을 찾나 싶었죠. 그런데, 아주 나중에 형이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집안에 첫 며느리가 들어오는데, 내가 사랑하는 여자보다는 우리 집안에 어울리는 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이해를 해 주어야 되고, 가난한 관리집사 집안에서 고생할 건데 그게 사랑 하나로 버텨질 수 있나 싶기도 하고….”
김 병장이던 시절 저에게 전화했을 때부터 형은, 첫눈에 반했다거나 짝사랑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매 주변을 맴돌면서 오랫동안 관찰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제 동기는 저에게 ‘형수님’이 됐고, 저는 도련님이 됐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제가 한 살이 많아 ‘오빠’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난생 처음 ‘도련님’ 소리를 들으니 영 어색해서 한참 동안 말을 섞기가 어려웠습니다. 형수님은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님의 2남 1녀 중 둘째로, 우리 부모님께도 자랑이 되셨습니다.
“우리 며느리 목사님 딸이여!”라고 하시는 게 부모님의 큰 자랑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자랑이 되는 것은, 이제껏 한 번도 부모님의 말씀이나 뜻에 반한 적이 없으며, 시어머니 살리기 위해 간을 내놓는다는 자신의 남편과 시댁 식구들 앞에서 고민을 한 번 하지 않은 여자라는 사실입니다. 수술이 잘 끝나고 병원을 퇴원하기까지 같은 이식 환자들 중에 어머니같이 자녀에게서 장기를 이식받아 살아난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며느리나 사돈댁까지 나서서 난리를 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 적이 있어 형수님이 더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형수님도 형에게 목청 높여 주장하며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연애사입니다. 형수님의 주장대로라면 형이 먼저 짝사랑을 시작해서 다가온 것이고, 형의 주장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형이 결혼을 하고 학교 근처에서 신혼살림을 차려 첫 조카를 낳을 때쯤입니다. 제게도 특별한 인연이 나타난 때죠. 형은 학교에서 파이디온 선교회 동아리 간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선교회다 보니 동아리 모임을 위해 필요한 장비나 준비물 같은 것이 좀 많았는지, 가끔씩 기숙사에 있는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기타 좀 구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기숙사를 수소문해서 가지고 나가는데, 형은 없고 묘령의 여인이 저를 맞아 인사를 합니다. 머리카락은 짧게 자르고 보이시하면서 약간은 도도하지만 차분한 여성성이 물씬 풍기는 그런 자매였습니다. 후에 저의 아내가 될 이 여인의 등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진혁 전도사님.”
“예 안녕하세요. 누구?”
“간사님께서 기타 좀 받아달라고 하셔서요.”
“예 여기 있습니다. 그럼.”
“저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동안 간사님하고 있으면서 여러 번 인사드렸었는데, 기억나세요?”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예? 예.”
“그러시군요, 기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뒤돌아 가는데, 그냥 보내기 좀 아쉬웠습니다.
“저기요, 기타 어떻게 받으면 될까요?”
“예? 그건 간사님께 말씀 드릴께요.”
“예, 알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 때부터 그 자매의 얼굴이 기숙사 형광등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가슴 위로 각인이 되어 닳지도 않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습니다. 평소 관심도 없던 형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차 같은 거 안 필요해? 빌려 볼게.”
“그 학생 총무라는 자매한테 전해주면 되지?”
그렇게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가며 도서관 넓은 유리창으로 비추는 노을이 장관을 이룰 때쯤, 강당 앞에서 친구들과 차를 한잔 뽑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깨끗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그 자매가 제 앞을 지나갑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