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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 8> 가족이 함께 걷는 여정-Family Life Cycle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가 속한 가족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론과 연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하거나, 한 가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 사람이나 가족이 지나고 있는 Life Cycle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족의 Life Cycle을 살펴보면서 알게 되는 것은, 가족들도 한 개인처럼 성장해가는 역동적인 유기체이며 그 때 그 때 주어진 발달의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닥치는 도전이 나 혼자 겪는 아픔이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게 주어진 숙제 같은 것으로 바라보면 그 시간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

 

에릭슨이 말한 것처럼 심리사회적인 발달과정에서 개인이 넘어가야 하는 발달 단계가 있다면, 가족도 Life cycle에 따라 성장해가고 변화해 가야한다(Cater & Monica McGoldrick, The Expanded Family Life Cycle : Individual, Family, and Social Perspectives, 2004).

 

상담소에 찾아오는 분들이나, 교회 안에서 청년부에서, 젊은 부부들의 목장, 장년부, 그리고 어르신들의 목장을 가만히 보면, Life cycle에 따라 관심이나 겪어가는 삶의 이야기들이 다르다. 20대에 어른이 되는 관문에 들어서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온다.

 

20대의 청년들을 보면 대부분의 고민은 진로 혹은 이성교제로 나누어진다. 그들의 엄청난 에너지는 짝찾기에 집중되어 있기 마련이다. KOSTA에서 최고 인기 강의가 대부분 연애강좌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젊은 것 자체가 아름답고 싱그러운 때인 동시에, 젊어서 불안하고 고민도 많은 시절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나는 누구를 만나 살아갈 것인가,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아서 더 가능성이 많은 때이지만, 그래서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젊음의 짐이다.

 

30대에 들어서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해 가는 나이 즈음이 되면 한 사람이 살다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가족 시스템에 적응해 가야 하는 큰 변화를 겪는다.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지만, 또한 만만치 않는 도전이 되기도 한다.

 

막상 하나가 둘이 되며, 완전히 다른 가족 문화에서 자란 서로에게 적응하는 것이 말처럼 쉬워 보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은 고기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아내는 멸치 들어간 된장국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불을 끄고 자야 잠을 자고, 아내는 책을 읽다 자는 버릇이 충돌하는 것이다.

 

남편은 항상 더워서 집 온도를 낮추고, 아내는 춥다고 두꺼운 이불을 꺼낸다. 그래서 신혼 때에는 치약을 아래부터 짜느니 중간부터 짜느니, 화장지를 앞으로 돌리느니 뒤로 돌리느니 하며 신경전을 한다.

 

변화하는 가족 시스템에서 하나가 둘이 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때 흔히 불거지는 성격차이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나랑 똑같은 성격의 배우자를 만나서 살면 편할 것 같지만, 서로에서 애초부터 끌리지도 않는다. 나랑 똑같은 성격의 배우자를 만나 산다고 상상해보면 분명해진다. 얼마나 지루할지.

 

30대에서 가족이 또 한가지 겪어야 하는 과정은 하나에서 둘이 되는 연습뿐이 아니라, 둘에서 셋, 넷으로의 가족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엄청난 도전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의 가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스스로만 책임지면 그만이었던 삶에서 배우자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낳고 책임져야 하는 큰 변화를 겪는다. 내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는 믿어지지 않는 변화와 기쁨과 부담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아이를 향한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도, 이유도 모르게 빽빽 울어대는 아이가 난감해지고, 그 덕에 수면부족은 만성화된다. 아이의 웃음에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면서도, 누가 밤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 것인가, 누가 설거지 빨래를 할 것인가, 내가 즐기는 취미 생활 및 친구들과 만나 재미보는시간과 가정에 투자하는 시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등등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때이다.

 

너만 힘드냐? 나는? 나는? 내 인생은 뭐냐?”라는 언성 높은 싸움이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기 일쑤다. 가족이 둘에서 셋이 되고 넷이 되면서 오는 적응의 시간들이다.

 

40대가 되면 자신이 아내, 혹은 남편이라는 사실, 엄마, 아빠라는 사실에 적응되고 익숙해진다. 어느새 삶은 정신없이 달려온 30대를 바탕으로 조금씩 안정되어 간다.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의 괘도에 올라가 열심히 일한 데에 열매를 맛보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에 가족에게 넘어야 할 과제는 조금씩 달라져 가는 자신의 건강과, 이와 동시에 맞물리는 아이들의 사춘기, 대학진학 등의 문제이다. 이제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적응이 되고, 부모라는 역할에 익숙해지고 있다가, 다시 아이들이 가족의 품을 빠져나가는 연습을 하면서 기존의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최선을 다해 키워 온 아이들, 자신의 일과 시간과 돈을 쏟아 부으며 매달렸던 자녀들이, 부모의 삶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라는 대로 예쁘게 따라 하던 아이들이 말대꾸를 하기 시작하고, 가족의 규칙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눈에 아직도 어리기만 한 아이인데, 자꾸만 위험한 일들을 시도하고,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하며, 자신을 어른으로 대해달라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자식에게 느끼기 시작하는 배신감과 더불어 자신의 갱년기 증상을 마주하면서, 가족은 또 한 번의 혼란을 겪는다. 남편은 남편대로 정열과 더불어 체력, 정력이 감퇴하는 때이고, 아내는 감정의 기복, 발한, 안면 홍조, 기억력 저하 등의 폐경기 증상을 겪으며, 자신의 인생, 이대로 저물어 가는가 하는 회의감에 젖어드는 때이다.

 

50대로 넘어가면서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주어지는 과제는 4-5명의 가족 구조에서 어떻게 다시 두 사람의 체제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점이다. 자녀들이 품을 떠나고 대학과 진로로 바빠지면서 자녀를 향했던 사랑이 짝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녀들이 떠나간 가정이 빈둥지 체제로 돌입하면, 허무함과 허전함에서 어떻게 헤어나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때, 자녀들을 감정적으로 실제적으로 독립시켜 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과제를 잘 끝내지 못하면,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직된 가족구조에서, 자녀들은 정서적 실제적 독립을 위해, 자신이 자란 가정을 아예 버리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제껏 부부가 함께 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가정에서 버팀목이 되었던 자녀들이 독립하기 시작할 때, 부부에게는 큰 위기가 닥친다. 둘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잊거나 개발해 나가지 않았을 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중지한지 오래일 때, 자식이 떠난 빈 둥지는 더 허전하고 위태롭기 마련이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황혼이혼의 이유 중 하나이다. 60대가 되면 다시 한 번 인생의 대전환을 맞는다. 바로 은퇴이다. 요즘 조기 은퇴가 일반화 되면서 이 과제를 마쳐야 하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자신을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좌절감을 가져오게 한다.

 

그렇게 바쁘게 시간에 좇기며 살아오던 인생이 일시에 정지 된다. 갑자기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시간뿐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해지는 것이다. 50, 60대에 들어서며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된 많은 분들이 상담소를 찾는다.

 

자신이 이제껏 쌓아온 모든 정체성이 직업과 동시에 없어져 버리면서 오는 망연한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옆에 없을 때, 내 일이 없어졌을 때, 내가 과연 누구이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해야 하는 큰 과제가 주어진다.

 

은퇴 이후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면서 70대 이후의 어르신들의 관심은 주로 건강문제에 쏠린다. 어르신들의 목장 모임은 대부분 몸 어디에 어느 음식이 좋은지가 주된 주제로 떠오른다. 이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 지가 가장 큰 과제가 된다. 나의 배우자, 친구들을 하나 둘씩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의 죽음을 과연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때이다.

 

Life cycle을 살펴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전도서의 3장의 말씀대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솔로몬은 우리에게 권고한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가족의 Life Cycle마다 하나님께서는 선물과 도전을 동시에 허락하신다. 가족을 이루고 삶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가족과 함께 누리는 기쁨도 말할 수 없이 큰 것이고, 동시에 겪어내어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 함께 한다.

 

그래서 찬양의 이유와 기도의 제목들이 동시에 있게 하신다. 이 여정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는” (7:14) 것이 우리가 천국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내는 지혜일 것이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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