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같은 말이로되 경우와 대상에 따라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같은 말을 하고서도 박수를 받을 때가 있고 비난 받을 때가 있는 것은 시의에 적합한 말을 하거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말이란 공연히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화자(話者)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므로 청자(聽者)는 말을 들고 화자의 관심사와 생각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더욱 바르고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부주의한 말
한가한 오후 시간에 몇 목사들이 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두어 시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대화의 내용이 시종일관 음식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목사라고 해서 음식 이야기를 하지 말란 법이 없고 또 항상 먹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다사다난한 시대 젊은 목사들의 대화가 음식에서 시작해서 음식에서 털고 일어나서야 되겠는가(목회서신 48회 참조).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광지 목회자는 친구나 지인(知人)의 방문 통보를 받으면 흔히 숙소를 마련(예약)하고, 공항에 가서 영접하고, 다음 날은 관광안내까지 한다. 한 목사가 방문자들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폭포에 안내했는데, 폭포를 본 방문자들이, “이게 다야? 이건 말이야 이과수 폭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빅토리아 폭포에 갔더니 물안개가 이것 수십 배는 되는 것 같았어” 하며 떠들어댄다.
저녁식사로는, 현지 목사의 신자 한 사람이 손님들을 그 도시에서 잘 알려진 랍스터 레스토랑으로 초대 했는데, 방문자들은 랍스터를 먹으면서 다른 도시에서 대접받은 크렙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이나 유럽에 산다고 해서 모두 여유 있게 사는 것이랴. 시간과 돈을 쪼개어 담임 목사의 손님들을 접대하려던 신자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요식업소에서는, “이집 이렇게 손님 없어서 적자 나겠는데”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렇지 않아도 손님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주인에게 왜 그런 말을 하며 그런 걱정을 왜 하는가.
왜곡 사용되는 말
향년(享年), 연상(年上), 경축(慶祝), 우리 사모님, 기도드렸습니다, 생신 등은 여전히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향년’은, 세상에서 누린 연수를 말하므로 죽은 사람에게 쓰는 말, 연상은 여성이 남성보다 나이 많을 때만, ‘경축’은 국가적 축일에만, ‘우리 사모님‘은 ‘내자’ 또는 ‘집사람’으로, ‘기도 드렸습니다’는 ‘기도 드립니다’로, ‘생신’은 손위 사람, 즉 스승이나 부모 또는 그 위 사람의 생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생이든 목회자든 이런 말을 잘못 사용하면 인격이 깎이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을 훼손하게 된다(목회서신, 97참조). 말을 바르게 사용함은 물론, 옳은 말이라도 시의에 맞게 해야 좋은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