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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78)

하나님을 근심케 한 회개송

 

 

하나님께서 근심하신다하는 표현은 조금 우리들에게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는 말씀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슬픈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구절들이 꽤 많이 있다. 인간과 유사한 감정적인 느낌을 공유하신다는 점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기쁨과 슬픔과 노여움과 아픔을 포함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직접 느끼신다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밝히고 있다.

 

창세기6: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원죄와 함께 태어난 사람들은 날 때부터 악하여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들까지도 악한 것뿐이었다. 하나님께서 근심하시며 탄식하실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을 창조한 사실 자체를 후회하시며 탄식하셨다. 창세기 6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근심은 대 홍수의 심판을 야기했던 무서운 근심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이제 다시는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아니 할 온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며칠 전에, 죄로 인하여 큰 고난당하게 될 당신의 백성들을 바라보시며, 다음과 같이 친히 마음 아파하시고, 근심하시며 탄식하셨던 적이 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23:37)”. 이 탄식은 약 37년 후인 AD.70년에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성전을 비롯한 예루살렘 전 지역이 초토화됐던 역사적 사건으로 성취됐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들이 받는 고통, 슬픔, 좌절에 대한 마음을 성령님께서 늘 이해하고 알아주고 위로해 주시기만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언제나 우리들의 편이 되어 주셔서 우리들의 마음에 전적으로 공감해 달라는 기대이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때 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아픔을 모른 척하신다고 생각하며 섭섭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고난과 슬픔과 고통을 모른 척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으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반면에 사사기10:16에 나타난 하나님의 근심은 뜻밖의 근심이다. 징계를 위한 근심이나, 동정을 위한 근심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기 위한 근심이다. 외세의 침략으로 고난당하고 있던 히브리백성들은 사사기10:13에 기록된 하나님의 조롱의 노래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이 주님 앞으로 나아갔다.

 

민족의 굴욕과 아픔이 상당 기간 지속되자 목이 곧은 목석과 같은 히브리백성들도 자신들의 고난의 근본적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18년간의 고난과 아픔을 통하여 스스로의 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백성들이 늘어갔다.

 

급기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다음과 같이 무릎 꿇고 눈물로 회개하며 부르짖는 기도로 노래했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10:15)”

 

회개의 기도에 진정성이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근심에 빠지셨다. 히브리백성들의 부르짖음과 실천하는 믿음을 목격하시고 징계철회의 방법을 놓고 근심에 빠지셨다.

 

한두 번 속은 것도 아니고, 한두 번 배신당한 것도 아니며, 이제 또 용서하고 구원해줘 봐야 세월이 조금만 지나면 또 배신당할 것을 뻔히 아시기에, 더 이상 히브리백성들을 돌아보지도 않으시려 했지만, 어찌 됐든 저들이 하나님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들이라, 더 이상 냉정한 처사만을 고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미워도 택하신 백성이요, 택하신 자녀들인데, 그들의 신음소리를 언제까지나 모른 체하고 계실 수 있는 분이 못되셨다.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 실천이 동반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직한 회개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근심케 하자.

 

노주하 교수

대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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