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자주 사용하는 말에도 혼란이 온다. 그 중 하나가 은퇴와 퇴직과 퇴임, 또는 은둔(隱遁)이다. 정의(定義) 하거니와 퇴직은 단순이 직장을 그만 두는 것, 은퇴는 직장을 물러나면서 하던 일에도 손을 놓는 것, 은둔은 아예 세상을 등지고 숨어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퇴직 했는데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면 은퇴요 찾는 사람의 발길마저 끊어지면 자연스럽게 은둔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교회나 직장을 잠시 떠나는 것까지 포함해서 넓은 의미로 “퇴임”이란 어휘를 사용하려고 한다.
아름다운 퇴임을 위해 지켜야 할 몇 가지 목회 상식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1) 전임 목사는, 교회와 후임자가 일심으로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 후임자의 목회와 신자들의 교회생활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교회가 원해서 남아있는 퇴임목사라 할지라도 후임자의 행정과 인사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 은퇴 목사는 교회에서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것을 알아야 한다.
3) 근래 책을 펴내면서 출판사들의 사정을 보니, 편집과 영업을 맡은 중견 직원들이 회사를 나가서 따로 출판사를 설립하고 전 직장의 고객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에서는 이런 것을 생존경쟁의 한 단면이라고 말하거니와 교회에 까지 이런 풍조가 들어와서는 안 되겠다. 특히, 이임 목사가 전임교회의 신자들과 함께 교회 인근에서 개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안 된 일이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목사 자신이요 다음으로는 신자들이다. 목사는 동료 목사들에게 지탄을 받게 되고 지역 목사들의 경계 대상이 될 것이며, 떠난 신자나 남은 신자는 모두 다 마음에 큰 상처를 가지게 될 것이다.
4) 떠나는 목사는 후임을 선정하는 일에 초연해야 하며 후임자에게 금전이나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행으로 인해 지참금(持參金)이 없는 목회자나 선교지에서 빈 손으로 돌아온 선교사 목사들이 목회지를 찾을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기부를 했건 누가 세웠건 “교회는 하나님이 피로 사신”(행 20:28) 기관임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차용(借用)한 부채가 아니 한,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연고권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5) 교회가 원하는 후임자라면 누구인들 어떠하랴만, 누가 보아도 역량이 부족한 사람에게 학연이나 지연, 친 인척이거나, 또 다른 이유로 교회를 물려주면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교회와 선교에까지 커다란 위해(危害) 요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 결정할 일이다.
이임 목사는 자신의 때가 지난 것을 알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름다운 퇴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후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전임자의 공과를 따질 수도 있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으나 피차에 덕담하는 것이 아름답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