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독일의 문학평론가 G. E. 레싱의 『세 반지 이야기』라는 희곡이 있다.
예루살렘에 회교 세력이 막강하던 시절, 유대교인 나단과 기독교인 성전기사와 회교 교주 살라딘이 같은 도시에 살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 성전 기사는 나단의 양녀 레아를 사랑했지만 종교문제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회교 교주 살라딘은 말 트집을 잡아서 나단의 돈을 빼앗으려고 나단을 불러서 회교와 기독교와 유대교 중 어떤 것이 참된 종교인지 묻는다. 나단은 직접적인 대답 대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옛날 동방에, 누구든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는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는 신비한 반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반지 소유자가 죽을 때가 가까워 오자 세 아들 중 누구에게 그것을 주어야 할지 걱정됐다. 그는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똑같이 부지런하고 심성이 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 끝에 모조품 두 개를 만들어서 세 반지를 섞어버린 후에 아들들에게 몰래 하나씩 나눠줬다.
얼마 쯤 세월이 지난 후, 다른 형제도 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형제들은 영문을 몰라 진품을 가려내기 위해 랍비를 찾아갔으나 진품을 가려내지는 못했다. 랍비의 판결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판결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 너희 선친께서는 너희 셋을 똑 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에게만 가보를 물려 줄 수 없어 그렇게 하신 것이니 너희들 각자가 진실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너희가 가진 반지가 진품임을 증명해 보여라.”
나단의 이야기를 들은 살라딘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알라신의 이름을 연호하며 나단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며 기독교인 기사와 나단을 화해시키고 레아와 기사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단은 기사와 레아가 친 남매간이며, 회교 교주 살라딘의 동생의 자녀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모두가 서로 껴안고 기뻐한다.
알다시피 세 반지는 유대교와 기독교와 회교를 나타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유대교인 나단은 기독교인들 때문에 가족을 다 잃었으나 기독교인 고아 레아를 친 딸처럼 양육했고, 기독교 신자인 기사는 유대교인을 증오하여 유대인의 집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나단의 인격에 감동하여 그의 양녀 레아를 사랑한다.
또한 고집불통 회교 교주 살라딘은 다른 종교에도 이성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대인과도 친구가 된다. 레싱은 이 희곡에서 참 종교의 증거는 교리보다는 삶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종교에서 교리는 그 종교를 믿는 동기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종교인이 교리를 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하며 살 때 참 신자가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겠다. 진리는 교리 속에 있으나, 그것을 빛내는 것은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