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그리스도인 모임에 갔더니 그 중 어떤 그리스도인이 차라리 불교방송을 듣는 게 어떠냐고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동의를 얻고자하는 기세를 펴고 있었다. 모두 교회신자들이었고 목사는 나 홀로였다.
모두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 사람은 나를 향해 가부간에 나의 의견을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오죽하면 오늘 날 교회신도들이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하면서 내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질문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긴 설명이 뒤따랐다 :
몇 몇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데 온통 마음이 가지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대게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왜 저 멀리 떨어진 지방의 담임목사가 굳이 온 한국이 다 듣도록 설교를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
저 목사가 저렇게 설교하자니 교회 헌금을 얼마나 방송국에 쏟아 부었을까?
저 설교목사의 설교는 그럴사한대 실제로 그의 삶도 그럴까?
어쩌면 전에는 아비목사가 설교하더니 이제는 자식목사가 대를 이어 설교할까.
저 깡촌교회 목회자는 언제 저렇게 전파를 타는 설교를 할까?
중들 설법이야 의당히 별것 아니라 치부하고 들어줄 수 있지만 목사의 설교는 생명 있는 대단한 것인데 어찌 이렇게 실감나게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고!
중설교법은 비진리를 진리인양 간곡히 전하는데 목사의 설교는 진리를 마치 비진리 전하듯 할까. 왜 산 복음을 죽은 복음처럼 전할까.
기독교방송에 출연하는 목사들은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인가? 언론보도를 맹신할 수는 없지만 계속 특정목사의 비리와 그로인한 교회분쟁들이 공개되고 있는데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꼭 방송설교에 얼굴을 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어떤 목사의 달변설교, 또 어떤 목사의 웃기는 설교, 또 어떤 목사의 유식한 설교 등이 “그거 진짜야” 하는 반문이 나오면서 그저 가소롭기만 하다는 것.
그 외에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강 이상과 같은 이유로 기독교방송 채널에 나오는 목사들의 설교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
그러면서 그 신도는 자기가 속해 있는 작은교회의 담임목사의 담백한 설교에 매우 영적 살이 찐다는 흥분!
그리고 기독교방송채널을 타는 설교 중에도 정말 몇 몇 목사의 설교는 은혜충만 그리고 생명충만 이라고 칭찬에 인색이 없다.
그는 긴 설명 끝에 굳이 홀로 목사인 나의 총평적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형제여, 차라리 불교방송을 듣고 싶거든 들으세요. 그리고 그것에 싫증이 일어나거든 기독교방송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것도 싫증이 나거든 아예 끄세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 같았다. 설교경연대회 같은 채널설교보다 차라리 진솔한(?) 사람의 소리인 불교설법 듣는 게 더 좋으련만, 그래도 “미워도 다시한번” 어디서나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게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건덕태도가 아니냐는 것. 설교자들은 한자세 낮춰 신도들의 생각의 밭에 와서 설교농사를 했으면 했다.
그날 모임은 아주 진지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