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 뉴욕 시가지를 거닐다가 갑자기 반갑게 맞이하는 길손을 만났다. 나는 인적상황을 즉각 인지하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모 세미나에서 나의 강의를 잘 들었고, 지금까지 그 강의 내용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와 아내를 이끌고 바로 그 옆 레스토랑으로 인도해서 푸짐한 대접을 해주었고 헤어질 때 몇 푼의 달러까지 지어주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뉴욕까지 움직이기를 잘했다고 했다. 움직이면 밥 생긴다. 동즉식(動卽食).
명동거리를 다니다가 모 교회 장로님을 만났고 그가 커피숍으로 인도해서 커피 한잔을 들면서 “율법과 복음을 갈라놓기에 명수(名手)목사님, 여생 다할 때까지 꼭 잘 전해주세요”라고 미니 세미나를 한 뒤 봉투가 없다면서 갈색종이 몇 장을 집어 주는 것이 아닌가? 명동거리에 오기를 잘했지, 집에 들어앉아 있었더라면 뭣하나, 움직이면 밥 생긴다. 動卽食(동즉식)이다.
나는 직장 연금이 없이 노년을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날보고 역마(驛馬)살이 끼여서 한곳에 오래 못 붙어 있고(?) 옮겨 다닌다나. 과연 그런가! 출판사, 신학교, 목회 등 골고루 돌아다녔다. 나는 십자군 사단의 연대장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군 사단장이시다. 연대장은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보직을 옮긴다.
사단장은 날 보고 제2연대장으로 명령하셨는데 내가 기왕에 있던 제1연대장 시절이 좋다고 고집 부릴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 날 사단장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고집으로 자리를 무조건 오래오래 지키려던 자들의 마지막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꼴을 많이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름 좋아 “장기목회” “장기근무”라던가. 그러니까 나는 연금이 없어진 노년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연금수령자 중에는 맥이 빠진 동물원의 보호관찰 그것처럼 때가 되면 입금되는 연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솔직히 마냥 따분하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밥은 있는데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움직여야 밥을 먹는다. 그래서 지금도 움직인다. 오해하지 말라. 먹고 살기위해서 이 나이 80이 되도록 세미나, 강의, 설교, 상담, 집필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일하는 재미와 그 재미에 대한 약간의 보상에 가벼운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당 받는 재미는 경험한 사람만이 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하셨다. 둥지에 쭈그리고 있는 새를 보라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일렀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손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에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4:18).
나는 지금도 현역일군이다. 일군은 삯을 받아먹고 산다. 즐겁지 않은가. 딸들이 아비에게 그만 뛰세요 하지만 내 속을 모른다. 일군은 일감이 생기면 기쁘다. 하루 파출부도 불러주면 그날이 행복한 것이다. 어디에서 초청 해주면 일단 기쁘다. 일하고 나면 삯은 따라오는 것이니까.
나는 때로는 없는 일도 만들어 일 만든다. 모일모시(某日某時) 모 장소에 모군(某君) 모군 모양(某孃) 모양 모여라 해서 성경공부를 시킨다. 깡농촌 교회 집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교회 텃밭에 재배한 고추, 토마토, 그리고 가지를 비닐백에 싸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던지는 나의 기분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 이팔청춘의 농부라니까.” 아내는 싱싱한 먹거리를 좋아한다. 그 떡 맛이 좋다고 한마디 했더니 그 교회 사모님이 한통 가득히 떡을 싸주면서 아내에게 갖다 주라고 할 때 나에게는 그것이 봉투사례 못지않게 오늘의 사례로 값지다. 왜냐하면 아내가 떡보 아줌마니까.
날 보고 역마살이 걸렸다고 하지만 나는 늘 한밭에서만 생산되는 농산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다른 밭에서 나는 농산물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다 같은 토마토라도 토양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나는 지금도 영식(靈食)을 나눠주고 육식(肉食)을 거둬온다. 아내는 지금도 날보고 오래오래 살라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복음의 일군이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아무래도 내가 삯을 받아야 아파트 관리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좀 궁색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좋다. 나는 動卽食者(동즉식자)니까. 生이란 무엇인가? 生했으면 命 즉 사명 곧 일을 한다는 것 아닌가? 사명 없는 생만큼 따분한 것도 없을 것이다.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