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운전자가 운전대리 업자를 부른다. 가정을 갖고 있는 신학생이 야간에 ‘운전대리’ 알바를 하면서 요지경 세상을 배운다. 지금은 온 세상이 대리다. 직장에서 실제직함에 못 미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서 주는 직함이 ‘대리’이다. ‘사장대리’ ‘상무대리’ ‘과장대리’….
젊은 시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구를 예비군 훈련에 대리로 참석시키고 서로 품앗이를 했다. 지금도 낮에 바쁘면 아내를 동사무소에 대리로 인감증명서를 띄워오라 한다. 그런데 이제는 ‘대리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일만 아니라 교육연수도 대신 참석하고 인간의 감정까지도 대리로 위탁 관리하는 회사까지 생겨났다. 나 대신 사과하면 대행비용 15만원을 지불하면 된다. ‘감정 대리업’은 업무상 실수로 고객과 마찰이 생기면 직접 사과하려니 복잡하고 그래서 대행을 신청하면 고객으로부터 싫은 소리 친절히 들어주고 돈을 받는 직업이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의뢰인을 위해 대신 사과하고, 사법 처리되지 않는 선에서 누명도 대신 써 준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를 대신해 등·하교 길을 동행해 주는 것이다. 내밀한 인간적 감정의 영역인 사과와 감사, 사랑과 이별의 영역까지 서비스 상품이 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도저히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점차 ‘맞춤형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한 때 사랑했던 연인간의 이별 통보를 돈을 받고 대행한다. 사과 대행 비용은 전화는 3만원, 대면접촉은 15만원. 교육 연수 대행은 3시간에 15만원이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수요는 꾸준히 증가한다고 한다.
‘효도’도 서비스 상품의 영역에 들어섰다. 특정비용을 내면 의뢰자의 부모님에게 간식 등 선물과 안부메시지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안부메시지는 의뢰자가 보내온 내용에 살을 붙여서 하도록 돼 있지만, ‘알아서 써달라’는 고객이 많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 영역 확장이 물질만능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과거 대행서비스는 돈이 많거나 범죄 등 목적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이제 일반 대중의 모든 생활 영역으로 확산됐다. 최근 일자리 부족도 심해지니 창업 회사들도 돈이 개입되지 않던 분야를 신종 서비스를 만드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정(情)적인 부분까지 사고파는 세상이 된 것이다. 어느 날 낯 모르는 성도가 주일날 담임목사를 찾아와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저희 교회 처음 등록하신 분인가요?”
“아닙니다. 00집사님 대리 참석자입니다.”
김용혁 목사 / 대전노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