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을 시작하는 아침, 어김없이 이번 주도 내 스마트폰에 입력된 ‘해야 할 일 목록’(To Do List)들이 나를 채근한다. 교회 목회에서 꼭 해야 할 설교와 심방, 상담과 회의는 물론이고, 외부 설교와 강의 스케줄까지 내 마음을 분주히 일으키고 있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언제부터 내가 이런 해야 할 일들에만 나를 맞춰놓고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이게 되었을까? 바쁘다는 것이 자랑인가? 바쁘다는 게 유세(遊說)인가? 그래야만 내 존재감이 확인되는가? 그래서 오늘은 잠시나마 그 모든 것들 앞에서 내 걸음을 멈춰본다.
물론 해야 할 일 많고, 가야할 곳 많고, 부르는 곳도 많은 목회자.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날 알아주는 이들 앞에 서는 일에는 묘한 희열과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날 흥분시키는 매력적인 것들, 그것이 날 넘어지게 하는 유혹도 될 수 있음을 왜 난 자꾸 잊는지 모르겠다.
어느덧 하나님 만나는 시간보다 사람 만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져버린 목회자.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보다 사람 앞에 서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져버린 목회자. 내공을 쌓는(In-Put) 시간보다 밖으로 토해내는(Out-Put) 시간이 훨씬 더 많아져버린 목회자. 나 역시도 그리 되는 것만 같아 오늘은 참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 교회 성도들 입에서조차 “목사님은 늘 바쁘시잖아요”란 소리를 듣는 게 정말로 잘하는 일인가 싶다.
나 역시도 스스로 불문율로 세워두었던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둘째는 성도들 앞에, 그리고 셋째는 세상 앞에”…. 지금까진 그런대로 잘 지켜왔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닌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서가 바뀌고 있다. 선배 목회자들로부터 귀 따갑게 들었던 말씀, “그래서 요즘은 주님도 주의 종 만나기가 힘드시다”는 일침. 그 농담 속 진담을 이젠 내가 들어야 할 참이다.
얼마 전 장모상이 있어 장례를 치르는데, 장모님 하관예배를 충남 논산 연무대의 어느 교회 목사님께 부탁드린 일이 있었다. 옛날 나의 장인어른께서 초대장로를 지내셨던 교회 목사님이라 그랬다.
그런데 그날 딱 뵈니, 그냥 봐도 시골 목사님. 게다가 머리도 희끗희끗하신 老목사님이라 솔직히 난 별 기대를 안했다. 나 역시도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집례라면 이력이 찬 목회자이기에 나의 이 못된 교만이 그분을 자연스레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이 하관예배를 시작하시는 순간, 얼마나 내 판단을 회개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그 목사님께 죄송했는지 모른다. 예배를 인도하시는 모습, 기도 한마디와 말씀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내공이 장난 아니었다. 얼마나 깊이가 있고 얼마나 통찰력이 있으신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듣자하니 그렇게 그 분이 하나님 앞에 앉아 계신 시간이 많으시단다. 모세처럼 … 말씀 앞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시간 역시도 그렇게 많으시단다. 야곱처럼 … 기도 시간만큼은 어김없이 지키시는 분이시란다. 다니엘처럼 … 그러니 그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리는 맑은 샘물 같은 말씀이 그날 장례에 참여한 모두를 다 씻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더 다짐해 보았다. 나보다 바쁜 목회자를 절대 부러워하지 말고, 나보다 유명한 목회자를 결코 좇아가지 말며, 분주함보다 고요함을 즐기고, 사람 앞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맛을 아는 목회자가 되기로 … ‘To Do List’보다 ‘To Be List’를 소중히 여겨 ‘해야 할 일을 더 만들기’보다 ‘모자란 내 모습을 더 갖추어가기’로 … 그것이야말로 ‘목회자 노릇하는 것’에서 벗어나 ‘목회자 되어가는 길’일 테니까.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