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노인인가 보다. 시내 나들이 하던 중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내가 지갑을 분실했는지 모른다. 거기엔 주민등록증과 국민은행카드 그리고 몇 만원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대전 아들에게 분실을 알리니 즉각 모모전화를 가르쳐 주면서 본인이 직접 전화하라기에 했건만 무슨 놈의 안내가 얼마나 복잡한지. 1번 누르라 해서 누르니 뭐라 뭐라 하고선 2번 누르라고 하고 누르니 또 뭐라 뭐라 하기에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났습니다.”하는 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대전 아들이 마침내 대리해서 분실신고를 마쳤지만 왠지 기분이 씁쓸하기만 했다.
친구에게 이 현실을 이야기 했더니 친구 曰. “그래야만 쓰리군(소매치기)도 먹고 살고, 전화국 직원도 일거리가 생겨서 월급 타 먹고 살지 않소.”라고 한다니까. 동사무소에 들려서 주민등록증 분실 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부탁하니 최근 사진 찍어 오란다. 사진관엘 갔다.
사진관 주인이 아주 기뻐 맞이하는데 주민등록증용 증명사진이라고 말하니까. 그 주인은 말 안 해도 안답시고 나를 의자에 앉히고 이리저리 자세를 코치 주더니 “찰칵”하고 30분 후에 찾으러 오라기에 사진촬영대금 1만5천원 지불하고 나왔지. 30분 후에 가서 사진을 찾으면서 어떤 나쁜 사람이 이 노인의 지갑을 빼앗아 가면 쓰겠느냐고 사진관 주인에게 동의를 얻고자 말했더니
그 주인 曰. “그래야 나 같은 사진쟁이가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는 데에는 그의 얼굴엔 조금도 농기가 없는 진실이 있었다. 이 모든 작태가 먹고 살자는 것이라고? 먹고 살수만 있다면 선악을 따지지 말자는 막가는 생각 같아서 겁이 났다.
나는 순간 동물세계의 먹이 사슬(food chain system)이 떠올랐다. 약육강식(弱肉强食). 많이 낳아서 소수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여겨지는 동물세계.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것이 동물세계의 삶의 현장이요 그게 질서라는 것이다.
잡혀 먹힌 놈도 유감이 없고 잡아먹은 놈도 양심가책이란 없는 세계다. 교도소의 교도관이 근무원칙대로 수형자(受刑者)들에게 엄격하게 다루니 수형자들 曰. “너무 그러지 마세요. 당신들도 우리 덕에 먹고 사는 것 아닙니까”
먹이사슬세계에는 善(선)의 개념이란 없다. 그 세계를 향해 굳이 正義(정의)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잡아먹힐 놈은 반드시 잡아먹히고 잡아먹을 놈은 반드시 잡아먹는 게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 사는 꼴을 보면 좀 지능이 높고 배운 자는 그만 못 한 사람들 위에서 먹어재키고, 좀 강한 사람은 그만 못 한 사람들 위에서 놀아재키는 것 같아서 꼭 동물세계의 먹이 사슬이 연상되기도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느 누구 먹고 먹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식인종이 아니다. 사람의 세계는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너도 놀고 나도 노는 것 밖에 없다. 사람의 세계는 共生共榮(공생공영) 아닌가? 그런데 왜 빈부격차가 생기고 왜 나라 간에 전쟁이 생기고 국민 간에 계급투쟁이 생기는고. 사람의 세계에서는 어쩌다가 노블레스가 되었으면 반드시 오블리제를 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동물의 세계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없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