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고통의 의미에 대한 바른 성찰이 없이 고통을 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무지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안락사는 고통을 감소시킬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취하는 극단적 해결 방법이다. 안락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고통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의미도 부정해 버리는 것이며, 고통과 더불어 삶의 가치까지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고통과 삶의 포기는 소중한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IV. 성경적 반성과 입장
1. 죽음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이해와 인식
목회자에게 있어서 죽음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웨이브라이트(G. L. Waybright)는 3가지 인식을 강조했다. 첫째,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죽음에 직면하면 슬픔과 고통의 경험이 동일하다. 둘째,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죽음에 관한 많은 ‘왜 그런가의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셋째,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죽음에 직면해서 그들의 관심은 ‘현 세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죽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다.
죽음은 인간의 적이고 마지막 원수이다(롬5:12, 고전15:26).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해야 한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삶, 즉 영생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마 27:50, 행 21:13, 빌 1:21).
칼빈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는 말씀을 ‘죽음을 이기는 힘의 원’으로 소개한다. 이러한 점을 목회자는 명확히 인식하고, 성도가 죽음 너머에 있는 새 생명과 부활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죽음은 어두움과 끝이 아닌 영원한 안식의 시작이며, 새 생명을 여는 통로이며, 죄와 고통이 없는 세계에서 영광의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는 새로운 출발임을 가르치면서, 임종을 기다리는 자로 하여금 부활의 소망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에 죽어가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과 생명에 관한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인으로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선택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2. 기독교 생명관의 이해
기독교의 생명관은 생명 경외사상이다. 이 사상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창조질서에 대한 절대 신앙으로부터 야기되는 기독교의 핵심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해야 하는 의무는 인간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명령이다.
기독교적 생명관을 인식시키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원리는 ‘하나님이 생명의 주권자’라는 원리이다. 성서는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이면서 소유자로 묘사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도 있고 빼앗으실 수도 있다(창1:1, 시24:1). 하나님은 자기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창1:27)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의 생명에 책임을 지고 있다.
김종걸 교수
침신대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