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설교에 대한 변화의 요청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일찍이 20세기 초, 기독교는 설교와 함께 흥망을 같이 하였다고 말했던 포사이트(P. T. Forsythe)는 당시 설교에 대한 위기의식을 직시하며 만일 기독교에서 설교가 사라진다면 교회는 세상의 시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간파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설교에 대한 위기의식은 프레드 크레독(Fred Craddock)의 책, 「권위 없는 자처럼」(As One Without Authority)이 발표되면서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혹자는 이러한 변화는 마치 설교학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바람은 학자들에 의해 신설교학(New Homiletics) 운동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신설교학자들은 신설교학 이전의 설교를 전통적 설교로 분류했다. 신설교학 관점에서 보는 전통적 설교는 설교자가 자신이 설정한 진리를 입증시켜 나가기 위해 연역적 논증 방식을 취한다. 일반적으로 명제 중심의 연역적 설교는 3개요(three point) 형식을 취하면서 설정된 명제를 설명하고 입증하며 설득의 작업을 펼쳐 나간다.
이와같은 방식을 크래독을 비롯한 신설교학자들은 청중을 무시한 커뮤니케이션 형태로 규명하면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있는 현대 청중에게 효과적 통화를 하기 위해서는 설교의 논증방식이 연역적 형식에서 귀납적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설교학 운동의 실체를 이 시대의 설교를 대변하고 있는 통일된 개념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현대설교는 여전히 전통적 설교 방식을 고수하면서 보다 청중과의 효율적인 통화를 추구하기 위한 연구와 방법론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설교학이 가져다준 하나의 신선한 바람은 물론 현대설교가 추구하는 설교자-청중 사이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관심과 실천을 촉진시켰던 점에서 기여한 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설교학을 현대 설교를 대변하는 통일된 하나의 개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설교학이 주장하는 바가 효율적인 전달방식에 무게를 두면서 설교의 내용이 비성서적 인본주의로 치우쳤다는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본 논문의 목적은 신설교학 등장이 현대 설교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이를 비평적으로 평가한 다음 현대 설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I. 현대설교의 흐름: 전통설교와 신설교학
크레독이 전통설교의 취약점을 들어 새로운 설교 패러다임을 주장한 이후 40여 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설교학계는 전통설교와 신설교학 양측의 팽팽한 긴장 가운데 놓여있다. 신설교학은 이야기설교로 대변되는 신설교학적 사상으로 무장되어 여전히 호전적인 태도로 전통설교의 시대적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있는가 하면, 전통설교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 도도한 물줄기를 따라 설교학의 한 중심을 흐르고 있다.
현대설교는, 이 두 세력이 자성과 성찰 그리고 이해와 양보를 통한 인정과 수용의 미덕을 발휘하도록 유도하는 과정 속에서 보다 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설교를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 양측을 대표하는 핵심적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이다.
1. 전통설교의 특징
1) 3개요의 연역적 논증 방식
일반적으로 신설교학에서 말하는 전통설교라 함은 3개의 개요로 구성되는 연역적 방식의 설교를 지칭한다. 연역적 방식이란 설교자가 본문을 통해 발견한 주제적 개념, 즉 명제를가지고 청중을 설득하는 것으로서 설교자는 전형적인 3포인트 형식을 따라 설교를 전개시킨다.
이때 설교자가 설정한 명제는 설교 초반에 제시되면서 그 이후 설교의 진행은 제시된 명제를 입증해 나가는 방식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대체로 학문 논증 방식을 따르는 것으로서 저자 혹은 화자 중심에서 설정된 주제를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논리화 하거나 입증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3개요 형식을 취하는 전통적 설교는 자칫하면 설교가 주어진 본문의 의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설정한 설교의 명제가 설교자의 주관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 설교 형식은 그것이 본문 설교냐 아니면 주제(제목)설교냐 하는 것이 논란이 되었고, 결국 같은 전통설교 개념 내에서도 강해설교는 주제설교나 본문설교 등과는 차별하여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설교 구성 방식에서는 강해설교 역시 3개요의 연역적 논증 방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신설교학적 관점에서는 전통설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무엇보다도 연역법이 갖는 결정적인 단점은 설교의 주지 주입식 전달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이 방식을 사용할 때는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입증시켜 나감으로써 회중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회중의 능동적 경청을 방해할 뿐 아니라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때 양방 간에 이루어지는 통화의 기본 원리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연역적 전통방식의 설교는 모든 면에서 불합리하고 무익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날 학문 연구의 논증 방식은 여전히 연역적 틀을 가지듯이 전통설교 방식은 나름대로 어느 특정한 신학적 진리를 논리력과 함께 효과적으로 입증하고 구현하는 장점을 가진다. 다만, 청중과의 능동적 의사소통 측면에서는 약점을 가진다.
2) 포스트모더니티의 감성 문화와 충돌
전통설교에 대한 거센 거부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일어난 현상이다. 전통설교가 청중의 이성에 호소하는 특징을 가진다면 이성주의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티와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다.
이성주의를 거부한다는 말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반드시 비이성적이거나 이성 그 자체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성이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음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상기 교수
침신대 신학과(실천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