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릴 창조하실 때 부모가 자녀를 출산하며 기뻐하듯 기뻐하셨다. 그리고 ‘에덴=기쁨’에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 땅에 가정을 설계하시고 그 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즐겁게 살라 하셨다.
기쁨은 누군가 나와 함께 있을 때 관계 속에서 즐거워하는 느낌이다. 기쁨의 주된 요인은 주로 비언어적 요소(환한 표정, 따뜻한 목소리, 포옹, 악수)를 통해서 경험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며 기뻐하셨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이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라”(스바냐3:17)
안타깝게도 한국의 가정은 유교적 전통으로 기쁨의 부재 가운데 엄숙함이 대물림되었다. 밝게 자라나야 할 자녀들은 참된 기쁨을 배우지 못한 채 부모와의 관계도 뒤틀렸다. 오늘날 많은 자녀들이 이 풍성한 기쁨의 원천을 맛보지 못하고 게임중독, 성중독, 일중독, 음식중독으로 빠져든다.
근원적 기쁨이 결핍되면 가짜 기쁨의 대용품들을 찾게 된다. 어린 시절 언어폭력과 학대로 자라난 자녀들은 권위자인 아버지와 갈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기쁨이 회복되려면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도 똑같은 피해자 였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모든 힘의 원천을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얻었다.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고,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에 매달리셔서도 “아버지 내 영혼을 부탁 하나이다”라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은 십자가도 넉넉히 감당케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간의 죄로부터의 저주만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기쁨이 충만하도록 기쁨을 회복시키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네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하셨다.
교회는 막힌 담을 헐고 새로운 공동체에서 기쁨이 회복되는 곳이다.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 충만하도록 창조된 곳이 교회다.
“내가 이것을 말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서 너희 기쁨이 가득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15:11)
우리가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만 견고해 진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하늘의 기쁨으로 얼마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아버지 음성에 따라 살았다.(요7;14)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요14:6)라 하셨다. 주님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성을 보여주시고 그 능력으로 사는 법을 제자들에게 교육하셨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사역은 이 기쁨의 관계에서 나온다. 이 관계 속에서 기쁨을 경험한자가 찬양도 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행도 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관계의 기쁨이 차단된 채 하는 모든 예배 행위는 가식이다. 외적인 모습을 거룩하게 꾸밀수록 내면의 속사람은 공허해 진다.
당신은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김용혁 목사
노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