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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權威)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은혜다. 하나님은 나에게 부모를 앞서 보내주셔서 부모를 통하여서도 언제나 함께 해 주신 은혜이기에 부모의 은혜는 곧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 부부가 사랑하여 한 몸 됨을 통하여 자녀를 생산하고 그 자녀는 부모의 한 몸 되는 사랑을 통하여 부모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며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관계 속에서 경험 할 수 있다. 물론 교회나 사회에서 사랑을 주는 멘토를 만나서 사랑의 관계를 경험 할 수도 있겠지만 나란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하는 분이라면 그것은 부모님 일 것이다.


요한복음 17:1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아들과 딸에게 고백한다. ‘내가 널 사랑한다. 너로 인해 행복하다.


아빠가 힘들어도 너만 보면 힘이 나고 행복하단다. 내가 널 영원히 사랑해그러면 아이들의 얼굴은 환해진다. 자녀의 환한 얼굴은 부모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된다. 아들의 영화로움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높은 자존감이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의 고백과 함께 자신의 필요를 채움 받으며 자신의 존재감에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받은 아들이 자라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자녀를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아들이 내게 묻는다. ‘아빠! 아빠는 왜 권위를 세우지 않으시나요? 지금까지 몰랐는데 회사생활을 해 보니 수직관계예요. 친구들을 보면 아버지가 권위적인데 아빠는 그렇지 않잖아요.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난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아들이 말한 그 다른 집이 바로 나의 원가족이었다. 난 나의 아버지와의 못 다한 소통과 사랑을 어느새 아빠가 되어 아들과 나누며 나의 아버지에게서 받고 싶었던 사랑을 준다.


그런데 묘하게 아버지가 아닌 아들로서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성인아이의 치유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란 말씀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대답을 했다. ‘예수님은 살과 피를 나을 위해 주시면서 사랑해 주셨는데 권위는 그렇게 사랑하므로 세워지는 게 아닐까? 내가 널 사랑하고 또 영원히 사랑한다.’


대학시절 교회 내 후배의 잘못에 대하여 난 말을 못했다. 그것을 깨달아야 후배 자신에게도 더 좋은 일이었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 후배를 가르치며 그 과정과 결과에도 책임을 지고 사랑 할 수 있느냐의 나 자신의 문제였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작다고 들려왔다.


그 이유로 나는 입을 다물었는데 그것은 잘 한 일이다. 내가 보다 넓은 마음으로 후배를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의 크기보다 권위를 세워서는 안 된다. 결국 사랑의 크기보다 권위의 크기가 클 때 그것은 자녀에게 상처가 되고 부모에게는 수치심을 가리는 도구가 된다.


그 의미를 알게 되면서 부모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상처와 수치심을 마주하게 될 텐데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에베소서 5장을 보면 남편은 23~24절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과 같고 복종하라는 말씀을 들어 권위를 세우려 할지 모른다.


그러면 아내는 25, 28절을 들어 주님처럼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주고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말씀은 미리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목사가 성도에게, 그리고 선배가 후배에게 권위를 세우려 하지 말고 내 사랑이 필요한 대상에게 내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고 내세우는 권위는 폭력이 되기 쉽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할 부모나 목사가 사랑 없이 내세우는 권위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져버린 것이다. ‘나는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상에게 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대상과의 관계가 원만한가, 그가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가를 자문해보자. 관계 속에서 나도 너도 서로 좋다면 한 몸의 관계, 사랑의 관계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도 주인이 자기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안다.


박종화 목사

빛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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