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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10)

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10)

필자는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두 번째 현현 사건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이 사건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관심의 초점은 부활에 대한 의문을 가진 도마를 향해 있었다. 예수는 도마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로 하여금 예수의 전인적 부활에 대한 믿음을 촉구한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20:27). 예수는 도마의 요구를 수용하여 그에게 신체적 증거를 제공한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비밀을 아시는 예수의 통찰력은 이미 그의 공생애 사역에서 강조된 부분이다(1:47~50; 2:24f.). 여기서 예수의 현현에 관한 표현은 도마가 요구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지는 않다. 도마는 예수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자기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며 자기 손을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 넣어보기를 원했다. 예수의 현현 묘사에서 손과 손가락에 관한 언급은 유지되지만, 못 자국에 관한 것은 생략되었다. 비록 예수의 현현이 도마가 요구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지는 않지만, 예수는 그의 손과 손가락 그리고 옆구리의 모습을 통하여 도마가 요구했던 것을 정확하게 제공함으로써 그가 믿지 못하는 부분을 확인시켜 주었다.

예수의 손을 보고 손가락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라는 말씀은 다른 한편에서 예수의 화육을 거부하며 예수의 신적이고 영적 존재성만을 강조하는 가현설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다. 예수는 화육하신 분으로서 공생애를 사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그 분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를 포함하는 그의 존재 전체가 부활한 것이다. 본문에는 도마가 손을 넣었다는 말은 없다. 이것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되다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믿는 자가 되라는 권면은 내가 결코 믿지 않겠다라는 도마의 주저함에 대한 해답이다. 이 권면에서 현재 부정 명령형이 사용된 것은 지금까지 믿지 않던 것을 벗어나 이제는 믿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도마의 고백을 준비하고 예수의 결론적 권면에 이르는 연결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것을 통하여 도마의 믿음의 성장 과정을 묘사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 곧 예수를 향한 믿음은 공생애 사건들에 대한 신체적이고 물질적 경험을 넘어서서 믿는 것임을 제시한다:

 

A. 도마(v.25): 믿지 아니하겠노라

B. 예수(v.27):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A’ 도마(v.28):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입니다

B’ 예수(v.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도마는 예수의 전인적 현현을 경험하고 예수의 말씀을 들은 후에 부활의 예수에 대한 그의 신앙을 고백한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 ‘하나님의 병치는 70인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이방종교의 종교문헌과 도미티안에 의해 영향을 받은 황제의 직함에서도 사용되었다. ‘는 예수를 위한 직함으로서 침례나 그것과 유사한 의식에서 원시 신조의 문구인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신앙고백에서 자주 나온다. ‘여호와의 대용어로 사용된 70인경의 견지에서 볼 때, 이 고백은 이 공식어의 충분한 의미에 이를 수 있다.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의 존재를 나타내는 최고의 기독론적 칭호로서 를 강조했다(10:9; 2:11; 고후 3:17). 최초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예수께서 하나님의 권능과 생명과 영광의 존재로 올리어지신 분임을 라는 칭호를 통해 나타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부른 경우는 요한복음(1:1, 18; cf. 5:18; 10:33)과 목회서신들 뿐이다. 물론 바울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언급했다(9:5; 2:6-11; 1:15~20). 요한은, 그가 서두에서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동일성의 맥락에서, 이 신앙고백을 기독론적 교훈의 절정이 되도록 의도했다. 이 신앙고백은 사실은 그의 최종적인 기독론적 선언이다. 도마의 고백은 요한복음에서 일련의 신앙고백에 위치하며 그것들의 결론과 절정을 이룬다(1:49; 4:42; 6:69; 9:37-38; 16:30). 일련의 신앙고백들이 이 최고의 고백을 향하여 진행한다. 예수는 이제 단순히 제자들의 주권자만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 자신으로 고백된다.

나의 하나님은 분명히 새로운 형태의 칭호이다. 아무도 지금까지 예수를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신앙의 도약을 표시한다. 예수가 진정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도마가 발견했을 때, 그는 예수의 공생애에서 암시되었던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1:14)라는 말씀에 대한 보충적 선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셨던 그 말씀이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하나님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나타낸다. 성령의 오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임재와 권세와 사역이 그의 대리자들이 된 제자들에게 위임된다. 도마의 고백에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개인적 신앙고백의 성격이 부각된다. 예수를 믿고 따름에 있어서 의문과 주저함이 많았던 그가 이제는 체험에 기초한 확실한 신앙을 고백한다. 그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는 그의 권세와 능력과 사랑에 있어서 신적 본질의 존재로 그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예수는 도마의 고백을 수용하면서 공생애의 예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을 축복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현현하신 예수와 대면하는 도마의 경험이 네가 나를 본 것으로 요약되어 제시된다. 그가 본 것은 공생애의 예수의 모습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에 집중되었다. 도마는 그 보는 체험에 기초하여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 부활의 예수를 나의 주와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느냐라는 말씀은 문법적으로 의문문일 수도 있고 혹은 평서문일수도 있다. 의문문인 경우에(한글 번역), 그것은 공생애의 예수를 보고 믿는 도마의 믿음과 보지 않고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대조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이러한 대조를 생각하는 학자들은 보고 믿는 믿음의 부적합성을 주장한다. 보고 믿는 믿음은, 비록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감각적 인식에 기초한 것이며 믿음에 정반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대표자는 불트만이다. 그에 따르면, 요한은 예수의 현현은 보는 것의 부적합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제시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예수의 현현은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허용된 표적과 같다. 이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요한은, 표적의 일정한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표적에 기초한 믿음을 경계했다. 참된 믿음은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며 그런 표적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마는 부적합한 믿음의 대표자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높은 차원의 믿음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이 평서문이라면, 예수는 도마의 체험과 믿음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된다. 도마의 믿음은 예수의 현현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정확하고 적합한 것이 된다. 그래서 그 다음에 계속되는 예수의 말씀은 도마와 같은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의 제자들의 말씀(복음) 전파를 통하여 부활의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그의 일을 계승하고 재현하게 하셨다(20:21). 예수의 이 말씀은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갖게 될 후대의 모든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의 두 말씀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황 곧 부활의 예수를 보는 상황과 공생애의 예수를 보지 못하는 상황의 대조를 가리킨다. 이런 대조에서 보면, 도마는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20:25), 오히려 부활의 예수를 보는 계시의 체험을 통해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다(20:28). 도마는 다른 제자들처럼 보고(직접적인 체험) 믿은 사람이며 그래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이제 도마를 비롯하여 예수의 현현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믿는 사람들은, 공생애의 예수를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고 처음 제자들이 가진 부활현현의 체험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처음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생명과 구원의 동일한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부활의 예수를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을 듣는 데서부터 주어진다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도 연결된다(10:17).

김광수 교수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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