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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국 목사의 회상록>-무디의 시작과 열매

제가 맡은 교회학교반은 겨우 꼬마 아이 하나뿐이랍니다. , 지쳤어요. 이렇게 하나를 데리고 어떻게 해요?” 이 소리를 들은 D. L. 무디(Moody)선생은 교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반에 그 한 어린아이가 존 낙스(John Knox), 조나단 에드워드(Edward), 조지 휫필드(Whitefield) 그리고 요한 웨슬레(Wesley)가 될지 모르잖습니까?” 이때 교사는 새 힘을 얻어 용기 있게 꼬마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자기가 베푼 도움이 당장 자기에게 돌아오면 결과적으로 보응을 바라며, 남에게 보이려고 베푼 이해관계가 깔린 위선이 되기 쉽다. 우리는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없더라도 후에 큰 유익을 위해 투자하는 사업가들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잔치에 초대한 사람이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14:21)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일까? 무디 선생의 전기 가운데 몇 일화를 소개코자 한다. 미국 보스턴의 작은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서 길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아무 집이든지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한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oll)1855년 어느 일요일 아침, 눈앞의 구둣가게에 들어가 구두 수선공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했다.

예수님을 믿은 무디는 회중교회 교인이 되었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중 주일학교 교사가 되기를 목사님께 여쭈었으나 구두 수선공의 신분이라 교사가 될 수 없다고 했기에 그는 자기를 인도한 킴볼처럼 길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모아 성경공부반을 시작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교사로 봉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1860년 시카고 구둣가게 직원에서 전적 복음전도자로 헌신하기에 이른다.

남북전쟁 당시에 출전한 후 종전이 되자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1865년 기독청년회(YMCA) 회장으로 봉사하다가 시카고에 큰 교회당을 지어 안수 받지 않은 사역자로 목회하게 된다.

어느 날 영적으로 갈급한 마음으로 시카고 다리를 건너다가 성령의 충만한 불을 받고 가까운 교회당에 들어가 떼굴떼굴 굴렀다. 사람들이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의사를 데려오고 했으나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고 피력했다.

1870년 유명한 복음 성악가 생키(Ira D. Sankey)와 합류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드디어 두 사람은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 복음을 전했다. 그는 휫필드와 웨슬리 이래 영국 땅에 큰 영적 부흥을 일으켰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 브룩클린 및 필라델피아를 위시한 미국 전역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이때까지 5,000만 명이 그의 설교를 들었고 개인전도를 합하면 백만 명이 넘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한다.

말년에 무디 선생은 노스필드(Norehfield)에 본부를 정하고 쉼 없는 복음 전도와 남녀 무디성경학교를 세우고 YMCAYWCA를 통해 선교지원자 수련회를 열고 문서전도에 힘써 널리 복음을 전했다. 그는 과연 19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열정적 복음전도자로 기억된다. 15년 전 저는 시카고의 무디 기념교회와 박물관을 견학하고 그가 성령충만을 받았다는 다리를 건너면서 구두 수선공에서 천국행 구두 수선공이 된 하나님의 사람 무디를 깊이 묵상하였다.

한 번은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서 옥외 집회를 인도한 후 설교를 마치고, 수천 명의 청중에게 영접에 관한 초청을 내일로 미루었다. “오늘 들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내일 저녁에는 중대한 결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날 밤 시카고의 대화재로 참석자의 거의 반수가 사망했다.

무디는 평생 이것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고 교훈을 삼아 일했다. 그날 저녁 초청을 연기함으로 수천 명의 영혼들의 피 값을 뼈저리게 생각하고 뉘우쳤다. 그 후로는 초청은 물론 결신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무디 선생은 매일 한 사람 이상에게 복음 전하기 않고는 잠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통행금지 시간 (curfew time)이 지나 잠자리에서 생각해보니, 그날은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잘 수가 없어 일어나 옷을 차려 입었다. 아내는 통행금지 시간이 지났는데, 어딜 가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무디는 복음을 전하러 나간다고 하니, “오늘 못한 것 내일 갑절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는 오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내일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라고 말하고 길거리로 나갔다. 전신주에 술취한 사람이 붙어 있었다. 무디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당신은 누구요? 이 밤중에 전도하는 것을 보니, 혹시 당신이 그 무디가 아니요?”라고 대꾸했다. 무디 선생은 시카고의 술주정뱅이에게까지 알려진 복음전도자였다.

한 번은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여직원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방으로 가서 만나려고 하니, 험상궂게 생긴 무디 선생이 두려웠던지 여직원이 말도 않고 뒷문으로 도망을 쳤다. 무디가 따라가니 그 여직원은 도망가서 집 문을 열고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따라 올라가서 그 방에 들어가니, 침대 밑에 숨어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설득하여 나오게 한 후에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인도했다. 이 여직원은 후에 시카고 무디 기념교회의 여전도회 회장이 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무디 전도자의 전기와 선다 싱과 가가와 도요히꼬(하천풍언) 선생의 전기를 읽은 감동은 55년이 지나도 선명하다. 침례신학교 예과에 입학하였다가 현 한남대학교 영문과에 편입했으나 중동기숙사에서 다녔다. 고향친구 임병준 군과 의논하여 무디처럼 로방전도를 하다가 대중전도를 하기로 맘먹고 토요일에 대전역에서 목청을 높여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두 번 전도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하루는 기숙사 옆에 붙어 있는 창녀촌에 같이 전도하러 나갔는데 아가씨들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하자 문을 열고 있는 창녀들이 다리를 벌리며 예수는 둘째고, 총각들 어서 들어와 우선 쉬어가라!”는 바람에 우리들은 질겁을 하며 얼굴을 붉히고 도망쳐 온 후 전도의 열매 맺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디나 선다 싱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천풍언 선생은 창녀와 결혼도 했는데! 그 후 간간이 전도는 했는데 김종복 대위 집사와 강형식(대전)군과 같이 토요일에나 주일에 전도하러 다니기도 했었다. 전도 대신에 토요일 오후 예배당 청소, 주일에 교회학교, 중고등부 교사와 예배시 성가대 및 예배시 지휘까지 하면서 출석하는 대흥교회에 열심히 봉사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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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차 총회, KT·금융결제원과 손잡고 ‘스마트 목회 환경’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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