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서-7
SNS목회(?)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SN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SNS는 사회 관계망을 구축해주는 온라인 서비스로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입니다. 이 SNS가 발달되면서 우리는 세계 구석구석의 사건 사고까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급 기종의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손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고, 또 그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멀뚱멀뚱 있는 사람들이나 책을 보는 사람들도 거의 볼 수가 없고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에는 이 스마트폰 어플에 교회와 관련된 컨텐츠가 많이 진출해 있어서 성경 찬송 같은 단순한 어플은 물론이고 각 교회의 예배 실황까지도 깨끗하게 시청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용 PC에서나 가능했던 많은 일들을 이동 중에도 구현이 되기 때문에 조금 큰 교회의 성도들은 어디에 있든지 자기 교회 예배에 실시간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영상매체를 통한 신앙생활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영성적인 감흥이 반감되고, 설교자와 성도 간의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교회에 가기는 했는데 본당에 못 들어가고 다른 부속건물에서 화면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뭘까요? 같은 화면이라도 지근거리에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물론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도 있고, 함께 하는 여러 순서가 있어 좀 낫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딱히 명확한 대답을 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현장예배는 이제 중요한 게 아니고 어디서든 예배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여러 성도들과 함께 설교자를 직접 대면하고 드리는 예배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성도들에게 그렇게 권면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런 환경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죄책감 없이 차선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지혜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을 통해서 진재혁 목사님의 짧은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에 문제가 큰 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은 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됩니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한 시간 설교를 들은 것보다 더 강한 인상을 받았고, 마치 하루 예배의 핵심을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퍼다 날랐습니다. 지금 저는 하루 하나의 설교를 SNS에 올리고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아니기 때문에 매일 하던 새벽설교를 안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과 똑같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설교를 만들고 올립니다. 저는 그렇게 유명한 목사도 아니고, 설교가 그렇게 위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짧지 않은 말씀을 끝까지 읽어주는 독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냥 저 자신과의 약속이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말씀을 연구하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나름 성실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 어느 친절하고 마음 씀씀이가 특별하신 분들이 장문의 댓글을 남겨주실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어느 날은 그 말씀이 그 분에게 적지 않은 의미를 주었다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격려의 말씀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저도 제가 올릴 글을 쓰면서 특별한 깨달음이 있을 때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범사에 초연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반응에 따라 기분이 충분히 바뀌는 목사입니다. 그러면서 좀 버겹지만 또 하루를 빠지지 않고 설교를 올립니다.
이걸 목회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하루 한번 성경보기가 쉽지 않은 오늘의 성도들에게 변두리의 목사로서 섬길 수 있는 작은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소망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짧은 글 한 줄로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목사가 되리라’고….
배동훈 목사 / 육본교회 신우담당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