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인‘다수결주의’의 단점을 논할 때 으레 등장하는 단어가 중우정치(ochlocracy, Mobocracy)라는 단어다.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고 개념 지을 수 있다.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민중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폭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으로 부족한 다수의 빈민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 ‘빈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플라톤은‘배의 비유’에서 선주, 선원, 키의 조종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선주’를 민주정체의 주인인 민중 ‘선원’은 민중 선동가인 현실정치인 ,‘키의 조종’은 나라의 경영을 의미한다.
민중을 상징하는 ‘선주’를 “덩치나 힘에서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지만, 약간 귀가 멀고 눈도 어두운 근시안이라, 항해와 관련한 다른 것들에 대해 아는 수준도 평범하다”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민중선동가를 포함한 현실정치인을 상징하는 ‘선원’은 “점잖은 선주를 최면제나 술 또는 그 밖의 다른 것으로 세뇌함으로써 판단이성을 마비시킨 다음, 배 안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배를 지휘하는”존재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항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은 선원이라고 경고한다. 소피스트들의 선동으로 죽임을 당했던 소크라테스의 사례,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소수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론, 합리적인 재판 없이 거짓 또는 과장 선전선동으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죽였던 인민재판 등이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반역자 압살롬의 쿠데타가 거의 성공적인 단계에 접어들 즈음 ‘후새’라는 전략가가 압살롬의 진영으로 들어왔다. 궁지에 몰린 다윗이 적진에 파견한 책사이자 첩보원이었다. 하지만 거짓으로 투항한 줄도 몰랐던 압살롬은 후새로 인하여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뻐했다.
압살롬에게는 이미 아히도벨이라는 뛰어난 책사가 있었지만, 후새 역시 다윗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전략가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압살롬은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다윗과 그의 잔당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기습공격하여 다윗을 우선적으로 처치하면 쿠데타가 곧 마무리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아히도벨의 뛰어난 전략을 물리치고, 여유를 가지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연합전선을 펴게 하면서 천천히 쿠데타를 마무리 짓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후새의 전략을 채택했다.
사실 후새의 전략은 다윗의 진영으로 하여금 멀리 피신하게 하여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이었다. 미래를 예견한 아히도벨은 실패를 직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살했고 곧 압살롬도 쿠데타 실패의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다.
아히도벨의 전략과 후새의 전략이 맞섰을 때, 아히도벨의 의견을 지지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압살롬과 그의 모든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후새의 전략을 지지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사무엘하17:14)”. 쿠데타세력의 입장에서는 압살롬은 물론 단 한 명의 지지도 받지 못한 아히도벨의 전략이 최상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어리석은 다수의 결정에 의해 거부되었다. 아히도벨 역시 무지한 다수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수많은 정치인들은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다중을 속이거나 선동한 다. 자신의 권력욕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은 숨기고 라이벌에게 불리한 것들은 침소봉대, 과대포장하여 선동한다. 순진한 다수를 속임으로써 자신의 지지자로 포섭하는 것이다.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진한 다수는 자신들의 집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거짓 선동가들을 추종한다. 율법주의자들의 선동에 넘어가 예수님까지 죽였던 무지한 다수처럼.
노주하 목사 / 찬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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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이 돌아왔다. 참 빛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셨다.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다는 사실에 목자들은 물론 동방박사들까지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 그리고 이때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 찬송을 드린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각 개교회들은 성탄트리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 성탄절 칸타타를 연습하며 이 땅의 평화와 사방에 펼쳐질 복음의 은혜를 만끽한다. 교회뿐만 아니라 서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청 광장과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에도 성탄트리가 세워지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분단의 상흔이 씻기지 않은 한반도 문제와 지역, 세대, 남녀 갈등 등 어느 때보다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절실한 2018년의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는 빛을 발해야 한다. 복음과 사랑의 빛을 온 세
로티 문 선교사는 미국 남침례교(SBC) 선교의 전설이다. 해마다 남침례교 교회들은 성탄절 헌금으로 로티 문 선교사의 이름을 딴 ‘로티 문 헌금’(Lottie Moon Offering)을 드린다. 로티 문 선교사(1840∼1912)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격변기의 중국에서 헌신적 선교를 했다. 그는 선교지에 나간 여성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최초의 여성 선교사다. 7남매 중 넷째로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로티는 남북전쟁 전에 남부 아가씨에 걸맞은 교육과 귀족들이 누렸던 특혜를 받으며 자랐다. 로티 문이 1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믿음이 신실하신 어머니는 자녀들을 좋은 신앙인으로 키워냈다. 로티의 오빠 토머스와 언니 오리아나는 훌륭한 의사로, 막내 여동생 에드모나는 미 남침례교회가 파송한 최초의 독신여성 선교사 2명 중 1명이다. 로티의 사역은 1872년에 중국선교사로 파송된 동생 에드모나 선교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1873년, 로티 문은 중국 북부에 도착해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사 일보다는 로티는 중국 현지 담당자에게 전도와 교회개척 분야를 희망했으나 그 요청이 거절되자 그는 홀로 핑투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
2018년 달력이 이제 한 장만 남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때다.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경험하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교회는 또 상처로 힘들어 하는 자들과 아픔을 겪고 있는 자, 어려움이 해결할 조짐마저 보이지 않는 자를 향해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를 향해 손을 내미시고 어려운 자들을 일으켜 세워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애굽의 압제와 권력에서 해방시키셨고 재산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대해서도 성경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죄인된 자들과 병든 자, 소외된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몸소 실천했다. 그러면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실천하기를 명령하셨다. 그 뜻에 맞게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사랑을 나누며 실천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입혔으며 어려움에 처한 자들, 순교의 순간을 맞이하려고 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냈다. 세상이 풍요롭다지만
매년 찬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주변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는 나눔과 돌봄을 위해 언론매체들은 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나는 섬김, 나눔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 어머니의 달비(딴머리) 머리다. 지금은 가난이 내게 위대한 선생이 되었지만 유아시절 아버지께서 친구에게 서준 과도한 빚보증 때문에 집과 모든 재산, 가재도구들이 집단리에 의해 모두 경매처분 되어 갑자기 가난이라는 것이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우리 식구들을 덮쳤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부모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했던 최후의 끈이 “내 어머니의 달비”였다. 까마득한 기억의 어린 날, 친정어머니께서 큰딸 시집보내면서 반닫이 느티나무 농 밑에 고이 넣어 주셨던 대장장이가 정성껏 만든 까만 가위를 새벽기도 드리고 와서 곱게 갈아 옆에 놓고 어머니께서는 그 일을 하실 때는 꼭, 잠에 취한 어린 나를 깨우셔서 앞에 앉히고 둥근 체경(거울)을 손으로 잡게 하고는 비녀를 뽑은 삼단 같고 칠흑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앞으로 곱게 넘겨 빗으시고 당신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를 잘라내셨다. 그리고 잘라낸 부분이 보이지 않게
아직도 건국일 하나 제대로 통일하지 못하고 둘로 나눠져 대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길을 잃으며 방황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는 급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터 아닌 전쟁터를 만들며 나라 밖으로 진군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저지와’(井底之蛙), 즉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물 안에서 ‘좌정관천’(坐井觀天)하고 있다. 좁디좁은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을 보면서 하늘이 이러니저러니 한다. 자기 좁은 세계로 하늘을 보며 하늘을 말하는 개구리가 바다를 알리가 있겠는가? 아니 바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있겠는가? 최근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모습이 꼭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 보고 서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청와대와 정부는 남북문제에 정권을 몰입하지만 남북문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고, 한반도와 세계를 위협한다는 북핵의 해결도 오리무중이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한국 경제는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이제 국민 대다수는 서서히 다가오게 될 경제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만의 정책을 찬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