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政敎分離)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4세기부터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16세기까지 교회와 국가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체제를 유지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정권 탈취를 위한 암투가 그치지 않았다. 그 중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으로는 신성 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그레고리 7세 교황이 머물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휴양지 카노사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던, 소위 “카노사의 굴욕”사건(1077년)과 왕과 주교 간의 권력 투쟁을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가 그 좋은 예이다.
구교는 여전히 제정일치를 견지(堅持)하고 있으나, 프로테스탄트 교회(新敎)의 입장은 종교는 한 정권이나 국가와 흥망성쇠를 함께 할 수 없는 불변하는 영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국교가 된다거나 어떤 정권이나 정당을 지지하고 나서면 언제인가 그 정권이 실권할 때 종교도 함께 쇠퇴하고 말 것이다. 불교를 국교처럼 섬기고 고승(高僧)들을 왕의 사부(師父)로 모시던 고려가 멸망하면서 불교가 당한 어려움과 기독교 신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두루 차지했던 제1공화국이 무너지면서 기독교가 입은 도덕적 피해가 이를 증명해준다.
기독교인은 세속 왕국인 국가의 시민인 동시에 영적 왕국인 교회의 시민이다. 이 두 왕국은 피차 추구하는 목표와 이념이 다르며, 특히 교회는 통치와 영토개념이 없는 영적 왕국이기 때문에 국가가 교회를 간섭하거나 탄압하지 않는 한 충돌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근래 국회에서 시행된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들의 종교적 발언이 무책임하게 회자(膾炙) 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언론인 출신 M후보자가 교회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한 발언과 법조인 출신 H총리 후보자가 국가와 교회가 충돌할 경우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쓴 칼럼 내용이었다.
M후보자는 이 발언으로 한 때 친일 인물로 오해받기도 했으나 그가 사퇴한 후에 그의 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과 그의 강연의 결론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언급한 것이지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 한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졌고, H총리 후보자의 칼럼 내용은 종교의 절대 가치를 언급한 것이지 국가에 대한 저항이나 반역을 부추기는 발언이 아니었음이 명백한 것이었다.
언론이 영적 왕국의 가치관을 현실 국가의 가치관에 적용해서 특정 종교나 종교인을 비판하면 그것은 곧 그 종교에 대한 혐오감이나 차별로 비춰지게 될 것이다. 또한 목회자가 정당정치에 참여하면 신자의 반을 잃고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는“정교분리”라는 선조들의 피묻은 역사적 증언을 간직하고 오직 목양에 정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