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도 내외분의 차를 타고 결혼식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자매가 뒷좌석에 앉은 나와 아내를 되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이 에세이의 제목 그것이었다. 아마 이 자매는 목회 끝 판에 돈 때문에 얽히고설킨 목사의 결말을 가슴 아프게 보았던 것 같다.
이 자매는 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권목사님은 참 목사 신줄 압니다. 그 연세에 지금 돈이 없지 않습니까?”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체의 빚이 없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 줄 내 아파트가 있고 쌀독에 쌀이 있고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있고 은행에 커피 값 정도의 충분한 돈도 있으니까. 이 정도에 이르지 못한 은퇴 동역자도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다. 그래서나는그자매에게재빨리응수했다“. 나는돈이 있는데요.”라고. 이 말을 듣던 그 자매는 웃으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소.“ 목사님, 그건 돈이 아니고 생계비입니다.”그래서 나는 돈과 생계비는 다른 것인가라고 잠시 경제학적 개념에 혼란을 겪었다.
나도 원칙적으로 은퇴 목사님들이 쪽박을 들고 동냥하는 생활을 해야만 성공한 목회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돈 없는 가난한 목사가 곧 성공한 목회자라는 공식은 절대적인 공식이 아니다. 그러나 조금은 그것이 부정확한 공식일지는 모르나 성공한 목회자는 거의 돈 없는 가난한 목사라는 것은 맞는 공식인 것 같다. 참으로 성공한 대다수의 목사는 그 노년이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지는 않더라는 것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공식임은 진리이다.
그럼 거꾸로 은퇴하고도 돈이 많은 목사는 전적으로 실패한 목사인가? 꼭 그건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아주 근사치에 이를 만큼 그런 공식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즉 돈 많은 목사는 거의 실패한 목회자라는 공식은 몇몇 예외를 전제하고는 거의 틀림없는 공식이라고 본다. 왜 이런 공식이 맞다고 보는가? 그것은 목사가 언제 치부할 겨를이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고, 또 돈 많이 남은 목사의 마지막 상황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끝에 가서 돈 많이 갖자고 목회했나라고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목사도 있다.
교회당을 지어놓고 시세 말하기를 좋아하는 목사는 돈 목사다. 청문회에서 국가주요인물을 검증할 때 주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세금탈루 등 부정한 방법으로 그 놈의“돈, 돈, 돈”모아 놓았다는 것이 걸림이 되는데, 그렇다면 애국애족이니 공익이니 하면서 일한 사람들의 결말을 늙어 호의호식하자는 것과 돈 없는 사람들 위에 점심한 그릇 사주고“에헴”하자는 꿍꿍이었던가? 끝에 가서 돈 많은 목사는 거의 실패한 목사임에 틀림없다.
세상 사람들이 알기로는 목사는 돈 생각 안하고 사는 성직자로 알고 있는데 끝에 가서 나타나는 게 결국 돈만 이라면 이것을 두고 마각(馬脚)을 드러냈다는 것이 아닌가?
참 목사 일을 한 사람은 대게 아름답게 가난하고, 목사질 해먹고 산 사람은 아주 거지행장이 되거나 아니면 졸부가 되는 등 양극단으로 나타나는데 어느 경우든 다 불행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듯 특히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가? 스승 예수 그리스도는“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9:58) 하셨는데 그의 참된 종이라면 마땅히 어떠해야할지 그 답이 나오지 않은가? 스데반 집사는 설교하고 돌 맞아 죽지 않았던가?
“목사님은 돈 없는 목사지요”라고 동승한 그 자매가 내게 던지는 그 말을 듣고 나와 아내는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여보, 돈없다고 서러워 마소. 그래, 우리는 돈 없는 참 목사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