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하나님 앞에 내가 진짜 죄인이고 그 정도가 얼마나 악랄하였는지 실상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래도 나는 믿지 않는 자들과 비교하여 조금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 토요찬양 예배와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완전히 벌거벗겨졌다.
어찌 들으면 비슷한 예배였지만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예배였다. 부활책자를 수정하면서 진행된 예배와 그로 말미암아 내게 전적인 회개의 역사가 일어남에 대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
지금에서 돌아보니 나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엄청난 사건을 어쩌면 그저 뉴스 기사로 치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냥 역사책 보듯이 끝났는지 모른다. 조금 더 확실히 말하자면, 악랄함의 온상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과장된 것 같이 보이지만 감정이 메마른 자의 믿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표현한 것이다. 완전히 주인의 마음을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 말이다.
역사를 믿는 것이지 나를 위해 부활하신 주인이신 예수님의 마음…. 그 사랑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았는지 모른다. 결국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랄한 자다. 예수님과 마음으로 교제가 되지 않는 자, 바로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였다.
그러다 보니 요한복음 16장9절의 죄에 대해서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나의 옛사람은 끝났고 새 피조물이 되었는데 삶에서 그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지금 간증을 써내려가면서 다시 또 느끼는 것이지만, 믿기지가 않는다. 진노의 자녀 독사의 새끼였던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이 믿기지도 않는 일, 세상에서는 절대 없는 일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 사랑이 예전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 바로 지금! 실제 사실이라는 것을 완전히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심장이 너무 아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찌하여 이 크신 사랑이 가리워 졌을까? 진짜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었다. 어떠한 수식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셨다.
너무도 고귀하고 완벽하여 찬란하신 분께서 보잘 것 없고 예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 온갖 모욕을 받으셨고 채찍으로 육체에 상함을 당하시며 배신자들 앞에서 숨을 헐떡이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이기신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시면서도 미리 알려주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하여 배신했던 내가 진짜 주인의 품으로 돌아올 기쁨만 바라시며 처참한 일을 참으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짜 사랑이었다. 내가 입으로 아무 감정도 없는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하나님의 사랑, 형제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던 나의 무감각한 이 말은 다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정도 크기였던 것이었다. 가늠할 수 조차도 없는 사랑이었다. 원수를 위해 죽을 수 있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 사랑이다. 너무 찬란하여 눈이 부신 사랑이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마귀에게 눈과 귀가 가려져 완전히 막혀있었다. 어찌합니까. 하나님! 제가 이제야 예수님께서 나 같은 놈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셔야했는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지, 이제야 마음으로 그 고통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가늠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고통을 알아달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지만, 제가 지금까지 이 사랑을 잊고 살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와 항상 함께하시고 계셨는데 그 사랑의 마음을 무시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무엇이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시작하는 지체들과 다르게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해도 결국 선택의 기로에서는 내가 주인이 되고 아무 감정 없이 살던 것이 바로 저입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의 죄가 이렇게 악랄한지 이렇게 큰 죄일지 몰랐어요.
지금 제가 온 마음으로 회개합니다. 주인의 사랑을 무시했던 것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지금 이 마음이 한 時의 감정이 아니라 정말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 나의 참 주인이신 그리고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목사님께서 주님과 내가 하나로 정확히 일치되는 놀라운 시, 정확히 한 운명 됨을 알게 될 때!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참 은혜와 참 기쁨이 흘러나올 거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활로 나는 진정한 새 피조물이 된 것이고, 새 피조물인 나는 바로‘사랑’이다. 더 이상 메마른자가 아니다. 복음의 실체인‘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이상 내가 주인 되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새피조물을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존심이 되는 자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장용석 목사 안산처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