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때 쓴 졸업논문 세미나의 주제는 “사랑의 법”중의 리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석학의 “Love and Law”를 폴 람세이(Paul Ramsay) 교수가 평가한 내용을 본인이 연구한 것이었다. 50년이 지나도 니버 석학은 칼 발트나 에밀 부룬너와 불트만 보다 저에겐 높이 평가된 20세기의 신학자요 목회자요 개혁자요 예수의 모형의 삶을 보인 주의 종이라 생각된다.
당시 나의 논문은 쓰고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인의 수난도 하나님의 사랑에 범주로 본 니버 교수의 옥스퍼드 강의 (Lectures) 일부분을 아래와 같이 살펴본다. “사랑은 바로 본뜻대로 사랑이다. 사랑의 단어는 확실히 그것과 인간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마땅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사랑에는 부주의한 사랑, “수난의 사랑” 자기희생적 사랑이 있다. 사랑은 부주의함엔 틀림없으나 사랑보다 더 주의 깊고 조심성 있고 융통성 있게 분명한 것은 없다. 또 사랑은 모든 수난을 참고 견딤에는 틀림없으나 역시 그 가운데서 기뻐하고 또 다시 기뻐한다. 사랑은 자기 욕구에 대한 희생과 이웃에 대한 선행과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즐거워한다….”
그렇다. 유치원 화상원아 박호용 군과 CTS기독교TV에 출연했을 때, 박 군의 당당하고 애절한 간증에 정애리 진행자는 계속 눈물을 닦았다. 미국서 잠시 돌아온 김민숙 양의 예수의 형상인 “수난의 사랑” 곧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사랑의 법을 이룬 듯한 그녀의 간증 중에 나는 계속 눈물을 머금었던 내용을 아래에 소개한다. 김민숙 양이 2005년 6월 4일 서울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민숙입니다. 저를 여기에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의 인생에 일하셨는지를 얘기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1989년 다섯 살 때 제 동생과 같이 여기 있는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저의 친할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또 저의 가족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첫 번째 유치원은 불교를 믿는 곳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알지 못하셨습니다. 한날 저녁 먹기 전에 저하고 제 동생이 부처한테 기도했습니다. 깜짝 놀란 부모님은 서둘러 우리를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셨습니다. 저희는 9월에 서울교회 유치원으로 왔습니다. 10월의 어느 바람 부는 날, 저와 제 동생은 유치원에 가기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유치원에 가면 재밌고 또 친구들도 만날 거라고 해서 유치원에 갔습니다.
제 동생은 1층에 있었고, 저는 2층에 있었습니다. 그날 저의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아파서 못 오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젊은 선생님이 제 반에 계셨습니다. 동생 반은 나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우리 반은 안에서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어떤 오빠가 저의 반에 와서 선생님에게 유치원에 불이 났다고 얘기했습니다.
무서워서 선생님은 문과 창문을 다 닫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반 아이들에게 다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가만히 있으면, 선생님이 도우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창문으로 뛰어 도망갔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다 위험을 피해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반은 13명중 7명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다른 애보다 더욱 많이 4도 이상 화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3일 동안 기절해 있었습니다. 한국 의사님들은 저의 부모님께 제가 죽는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3일째 되는 날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안 나지만, 깨어나자마자 엄마에게 “하나님이 엄마, 아빠 더 기도와 찬양을 하시라고 얘기하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많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한국 의사님들은 화상치료를 잘 몰라, 오히려 저에게는 더 피해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다친 애들을 모두 미국에 있는 좋은 병원에 보내 주었습니다.
그 병원은 화상전문 병원이었습니다. 이름은 미국 텍사스 주 갤베스톤에 있는 슐라이너스 화상병원(Shriner`s Burns Hospital, Galveston, Texas)입니다. 거기에 계신 미국 의사님들은 저를 보시더니 많이 화를 내셨습니다. 한국 의사님들이 해준 치료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치료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저만 미국에 몇 개월 있다가 먼저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1학년을 6개월간 다녔습니다.
그때에 저의 부모님과 목사님이신 친할아버지께서는 교회에서 보상비도 받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또 불이 난 건 교회 탓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의 부모님은 한명국 목사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한 목사님께서 미국에 있는 슐라이너스 병원을 소개해 주셨고 또 이민할 수 있도록 재미 한인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족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미국에 가서 화상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위해 미국에 가셨고, 또 저의 동생도 함께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 땅에 와서 아빠는 술, 담배를 끊으셨고 또 우리 가족은 매주 토요일 가족 예배를 했습니다. 병원이 있는 갤베스톤(Galveston)에 1년 정도 있다가 우리는 휴스턴(Houston)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들이 일을 하고 싶으셨기 때문에 이사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저의 가족은 미국 사회에 어렵게 적응하면서 살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매일 아침 예배하고 기도하십니다. 꼭 아침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에서나 학교, 교회 또 일터에서 저의 가족은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우수학생으로 표창도 받고 공부를 다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와코에 있는 베일러 대학교(Waco. Baylor University)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는 워싱턴에 있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University)대학원에 장학생으로 들어갑니다.
대학원에서 전공할 분야는 우리말로 재활상담(Rehabilitation Counseling)입니다. 졸업하고 미국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서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드높여서 한국에서 이민 오시는 분들이 미국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또 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5년 전 미국 이민을 보낸 유치원 화상원아 김민숙 양의 당당하고 의젓하고 꾸밈없고 생기 넘치는 “수난의 사랑”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계속 눈시울을 적셨다. 4도 화상이상의 도깨비의 얼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형상과 부활의 영광의 빛을 풍기는 모습의 간증이었다. 얼굴이 성한 우리 성도들에게 부끄러움을 주었고 새로운 충전과 영적 도전을 주었다.
쉬지 않고 기도해 온 박성희, 박호용, 라하나, 윤희, 김지영, 전효민 등의 화상원아들의 모습과 먼저 천국에 간 여섯 명의 어린이들을 떠올렸다. 김민숙 양은 워싱턴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 시애틀에서 국가공무원과 다른 직장에도 일하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선교에 힘쓰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한명국 목사 /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