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라면 너무 늦은 법은 없다. 인생을 재건축하기에도 늦는 법은 없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열반에 입적하셨지만 모세는 왕궁에서 왕자로 40년 끝에 살인자가 되어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추방되었고,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로 40년이 지나 드디어 80세가 되어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소명을 받아 120세에 느보산에서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켰다. 유행어로 80세에 데리러온 저승사자에게 대답한 말이 무엇이든가?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갈데아 우르에서 떠나 100세에 이삭을 낳고 175세에 부름을 받을 때까지 가나안에 축복을 누렸으며 복의 근원이 되었고, 공자는 73세에,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여호수아는 70세에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영도자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토지를 분배한 후 110세에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했다.
30세경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사울 청년은 바울 사도로 67세 가까이 죽을 때까지 지상충성을 다한 고백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1~2)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동산까지 따라간 유일한 제자로 예수님의 유언대로 일찍 성모 마리아를 모셨고, 나이 96세경에 밧모 섬에서 유배 중에 요한계시록을 쓰고 천수를 누리면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했다. 수많은 제자들이 대기만성으로 죽기까지 충성을 다했다.
세계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하는 말처럼 나이를 초월해 대기만성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 캐서린 에베트(Catherine Ebert)는 변호사 개업을 96세에 시작했고, 헬렌힐(Helen Hill)은 95세에 고교졸업장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보다 76년이 지난 후였다. 코모도르 반더빌트(Vanderbilt)는 88세에 위대한 강철왕으로, 소크라테스(Socrates)는 70세가 되어서도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콜럼버스(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50세, 그랜드마 모세(Grandma Moses)가 명성을 얻은 것도 90세, 에디슨(Edison)이 화재를 딛고 세계의 발명왕이 된 것이 67세였으며, 조지뮬러(George Muller)는 73세에 본격적인 고아원 사업을 시작했으며,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인기를 별로 끌지 못한 영화배우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70세 노인이었을 때였으며, 재선에도 승리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약점과 단점을 오히려 축복과 성공의 기회를 삼은 위인들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약점과 고난과 역경을 전화위복으로 바꾼 위인들도 많이 있다. 소크라테스(Socrates)성현은 추남 중의 추남이었으나 성자가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두 번 결혼한 과거와 말더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철인이 되었고, 톨스토이(Tolstoy)는 젊은 날 매독과 임질에 걸려 고통 속에 걸작「전쟁과 평화를 낳았다. 링컨(Lincoln)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오직 성경으로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루스벨트(Roosevelt)는 소아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고, 밀턴(Milton)은 소경이 되었으나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성이 되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시청각 장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여성 인물이 되었고, 테레사(Teresa)수녀는 키가 작고 얼굴이 큰 못난이였으나 인도의 성녀가 되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32세에 비극적인 유서를 작성하고는 그의 형제인 칼과 존에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유서엔 삶에 대한 회한과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지냈다. 이제 머지않아 삶을 마감할 것이다. 오! 하나님이시여, 내게 기쁨의 날을 허락해 주소서.” 그 후 베토벤은 46세부터 귀가 멀기 시작하여 필담(筆談)이 아니면 대화를 나눌 수조차 없게 되었다. 작곡가로서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그의 육신에 덮친 격으로 염성 카타르, 황달, 류마티스의 고통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런 몸으로 베토벤은 불후의 명작 9번 교향곡을 작곡하였다(찬송가 13장). 이 합창 교향곡은 그의 나이 53세에 완성한 것이다. 이 곡은 23세 때 프리드리히 쉴러(Schiller)의 「환희의 송가 」를 읽고 감동받은 영감에서 작곡한 것이다. 이미 나이가 든 노인이었지만, 그는 가난과 귀머거리에 육신의 가혹한 질병등 인생의 모든 고뇌와 역경을 위대한 신앙으로 극복하고 오히려 이를 찬송으로 승화하여 대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57세로 소천 되기 직전, 비엔나 극장에서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그가 53세에 완성한 합창 교향곡을 공연하였다. 청중들은 베토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그는 박수갈채의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부터 큰 기쁨이 솟구쳐 올랐다. 외적환경은 비참하고 불행했지만 놀라운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드디어 그는 천신만고 끝에 해낸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57세의 나이에 소천 되어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외에도 베토벤과 같이 다른 약점을 강점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사람은 내가 교회당을 지으며, ‘막노동’이을 할 때에 새로 발견했다. 첫째, 예수님은 목수 노동자로 30년을 일하셨고 3년을 복음전도 노동자로 일하셨다. 둘째는, 40여년 갈릴리 바다의 어부 노동자로서 베드로는 남은 여생을 스승의 복음을 위해 중노동 끝에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 셋째는, 사도 바울로서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중에 만난 예수님을 위해 천막 깁는(tent maker) 노동까지 하면서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고 참형으로 순교하기까지 분골쇄신했다.
“괭이를 든 농부”의 이야기가 있다. 밤사이에 길 한복판에 큰 바위가 놓이게 되었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누가 이따위 짓을 했느냐”, “나라에서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이 도시에는 사람도 없느냐?”, “관리들은 뭘 하고 있느냐?”라면서 한마디씩 큰 목소리로 불평만 늘어놓고 지나갔다. 아무도 이 바위를 길옆으로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 한 농부가 괭이를 들고 지나가다가 이 바위를 보게 되었다. 그는 이 바위 옆을 파서 바위를 흔들어 굴러가게 하여, 길 옆 도랑으로 밀어 넣었다. 놀랍게도 바위가 있던 자리에 주머니가 흙에 묻혀 있어 열어 보니 금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것은 장애물인 바위를 치우는 사람에게 주는 왕의 선물이니 받아 가시오.”라는 쪽지가 있었다.
성경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약4:14) 하였고, 오늘밤에 네 영혼(눅12:9)이 어떻게 될지 모를 뿐 아니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우리이기에 ‘하루살이’삶으로 매일매일 새 출발하자. 놀면 안 된다. 일해야 한다.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오늘 시작하자! 지금 바로 시작하자(New Start)!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기약할 수 없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오늘만이 있어 최선을 다하자. 성령님의 세미한 소리에 민감히 반응하자. 주님의 강한 손을 붙잡고 이 패역한 세상을 향해 달려가서 복음을 전하자. 세상은 주님의 발등상으로 그의 발아래 있으니 섬기며 충성하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 한명국 목사BWA전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