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코미디언이 선창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우습다하면서도 긍정해 버리는 유머가 떠들고 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
▷ 전통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
▶ 반전통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죽는다”
▷ 전통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직 이르다”
▶ 반전통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진짜 늦었다”
▷ 전통 “가는 말이 고으면 오는 말도 곱다”
▶ 반전통 “가는 말이 고으면 사람들 얕잡아 본다”
▷ 전통 “범에도 물려도 정신 차리면 산다”
▶ 반전통 “범에게 물려 가면 더 아프다”
▷ 전통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
▶ 반전통 “고래는 칭찬해도 듣질 못한다”
참으로 난센스이지만 그 난센스가 센스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전통적인 것이 반전통(反傳統)이 되어 나뒹굴고 있다. 이전에 진리이던 것이 지금은 진리가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 또 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으로는 형 놀부는 악하고 동생 흥부는 착하더라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동생 흥부는 무능한 가장이고 형 놀부는 성공한 가장이라고 한다. 사실 옛 전통적인 말씀이 지금 사람들의 판단엔 이 정도에 이르렀다.
진리를 비진리로 꼴바꿈하려는 인간의 청개구리 심정은 최근의 시대상이 아니다. 고정적인 것에서 유동적(流動的)인 것으로 이탈하려는 인간의 탈출심리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아담은 마귀의 말을 듣고 따먹었다(창3:1~5).
사람들은 東을 西라하고 백을 흑으로 바꿔놓기를 좋아한다. 심리학자의 이론을 갖다 댈 것도 없이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진리를 뒤집기로 시작했다. 엄위한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 도전한 인간이 무엇엔들 겁내겠는가?
이런 뒤틀려 먹은 인간의 반전통(反傳統) 반진리(反眞理)심리가 교회 안에서도 지금 작동하고 있다. 목사들은 전통적으로 해오던 복음설교를 그대로 했으면 좋겠건만, 온갖 주변변화를 핑계대면서 뒤틀린 설교하기를 원했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마저 좀 더 다른 설교를 듣고자 했다. 목사와 교인은 이런 탈선에 서로 맞아 떨어졌다. 함께 비진리의 비탈길로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튀는 설교자, 돋보이는 설교자, 유별나게 뛰어난 설교자가 출현했다.
교회는 차별화된 교회생활을 하자고해서 교회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세상 옷을 입고 있다. 무슨 놈의 신학교가 성경만 가르치면 될 것이어늘 관광학 컴퓨터학 호텔경영학 부동산학 같은 것도 신학교의 교과과정에 들어 있지 않은가? 튀고 싶은 신학교가 되고 싶어 튀다가 떨어지면 뇌진탕 되지 않겠나.
진리가 뒤집어 지고 있는 세상에서 역풍(逆風)을 받고 역류(逆流)를 거스름이 진리의 생명 아닌가. 죽은 고기를 물에 떠내려가고 산고기는 물결을 거슬려 올라간다 하지 않았나.
/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