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목회자로 소명을 받은 후에 저의 관심은 목사님들의 설교에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절대적인 사명이라면 설교가 될텐데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저는 성장기에 이동원 목사님을 비롯해서 정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설교를 해주시는 담임목사님들을 만났기 때문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듣는 것과 실제로 하는 일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설교를 하는 일보다는 듣는 일이 많았던 시절에 적지 않은 교회들을 다녀보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지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참 중요하고 핵심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교회는 부흥을 하고, 은혜를 받는가 하면, 어느 교회는 정말 복음적인 말씀이 선포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은혜에 목말라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가만히 보니까, 그 말씀이 어떻게 들려지느냐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나온 예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10여년 쯤 전에 그 교회에 서울대에 다니는 맹모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부산 출신이었는데 엄청나게 사투리가 심했다고 합니다.
어느 더운 여름 날, 자취방에서 친구와 선풍기를 세차게 틀어놓고 자고 있었는데, 한참 자다가 옆에 자고 있던 친구에게 “야쿠르트 줘”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같이 자던 친구가 ‘얘가 잠꼬대를 하나? 뭔 자다말고 야쿠르트를 찾나?’그랬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다시 좀 더 큰 소리로 “야쿠르트 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야 임마! 내가 야쿠르트 아줌마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하면서 핀잔을 주고 그냥 누워 잤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이 맹모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선풍기를 탁 끄고 자더랍니다. 같이 자던 친구가 이게 뭔 일인가 하고 물어왔더니, 이 맹모 친구는 선풍기를 “약으로 틀어줘”라고 말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는 같이 자던 친구는 이걸 “야쿠르트 줘”로 들은 것입니다.
전 이게 굉장히 의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교회 강단의 문제이기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진지한 마음으로 ‘여러분 약으로 틀어주세요’하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저 목사님이 목이 마른가? 왜 야쿠르트를 달라고 하는가?’이렇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해 봅시다. 성경은 믿음이 어디서 난다고 합니까? 로마서 10:17절에 분명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명확한 복음적인 설교라고 해도, 듣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면 믿음이 생기기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한 것은, 이해할 수 있도록, 들을 수 있는 말을 사용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문적인 설교자가 되면서 항상 고민하고 힘쓰는 것은 저에게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 들리는 설교를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초안이 완성되고 나면 제일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설교의 양을 가장 이상적인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알맞게 줄이고, 사용되는 언어가 청중에게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단어들로 구성되도록 단어 바꾸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말의 표현이 너무 진부하거나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로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설교 후에는 아쉬운 부분을 수정해 줍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설교가 청중들에게 점점 들려지기 시작한다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착한 성도들은 목사가 제대로 된 설교를 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줍니다. 목사도 나름대로 사연이 있겠다고 생각하고 인내를 가지고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면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정한 기한이 지나면 어쩔 수 없는 심령의 갈증 때문에 말씀을 샘을 찾아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또 전도자는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들리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 능력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목회자와 전도자의 삶들을 신나가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배동훈 목사 남성대교회, 침례교 군목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