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Ⅱ)
“한 전도사, 내 배 두들겨봐!”해서 다가가서 두드려보니 “통통 둥둥”소리가 났다. “한 전도사가 나에게 시킨대로 오늘 문막교회 가서 설교하고 저녁은 국수(냉면)를 주는 대로 세 그릇 다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언젠가 훌륭한 선교사가 되려면 한국인 영혼을 사랑하고 한국말 잘 배우고 음식도 주는 대로 잘 먹어 한국 문화에 적응해야 된다고 충고했었다. 나는 그가 십자가를 지는 모습에 눈여겨 보았는데 과연 일동 선교사가 되셨다.
군대시절 원주군인 복지센터에 근무할 때, 하다윗(David Howle) 선교사는 농담으로 목사님을 “목사놈”이라 부르곤 했다. 혹시 나를 만날 때나 김학준, 심영근 전도사를 만날 때 “한 전도사놈, 김 전도사놈, 심 전도사놈”이라 해서 처음에는 ‘선교사치고 교양 없이 잘못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그 후는 ‘그러려니’하고 웃었다. 그가 선교사로 나와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2년간 배울 때 말이 서툴고 발음이 잘못 나와서 목사님을 “목사놈, 목사놈” 이라 해서 큰 실언을 했었는데 농담으로 가끔 “전도사놈”이라 했으나 전도사놈의 “놈”이 안되어야겠다는 경종의 말로 나는 이해하고 받았다.
주일 학교 때부터 그 교회 다닌 소위 터줏대감 행세하는 집사와 콧대 높고 고집이 센 인수집사가 예배 후 회의 중에 의견충돌로 마치 산돼지와 늑대의 투쟁으로 변했다. “저런 거 낳고 어찌 미역국 먹었노!” 하니 얼른 맞받아서 “에-이 쇄 아들놈 같으니라께!”라고 했다.
이윽고 목사의 만류에도 성난 두 사람은 회의실 밖으로 나가서 아주 쇄 아들놈의 말싸움을 하고나서 나중에 들려온 소리는 목사가 싸움을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 퍼져 화살이 목사에게 계속 날아오니 그 목사는 “십가자로” 참고 “쇄아들놈”이라 말한 자를 찾아가 잘 권면하여 교회에 다시 나오게 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목사도 “십자가로” 부활의 승리를 체험한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약4:11 상)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성도가 되어 천국에서 면류관을 못 쓰고 개털모자 쓰고 나타나면 어찌되겠노!” 경종의 목소리를 높이던 신영균 목사의 설교가 1966년 원주연합집회에 울렸는데 50년이 지나도 가끔 천국 생각할 때는 되새김질한다.
목사가 ‘십자가로’ 목회하면 부활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천상에서의 네 개의 상급 곧 금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딤후4:7~8)을 받게 된다.
어떤 총회장은 총회 시에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장로, 집사 앞에서 꼼짝 못하다가 총회에 와서 큰소리친다!”고 발언군들에게 질타하기도 했다.
설사 교회에서 기펴지 못한 목사가 총회에서 발언 한다고 총회에서 마저 기죽어 교회로 가야하겠는가?
목회자는 자기 재산 전부 바쳐 전세방 개척교회 시작하여 온갖 수욕을 견디고 말 못할 고생하며 욕바가지 쓰고 겨우 고개 들고 일어나 피땀 흘려 교회당 지어놓으면 그때부터 장로, 집사 양반들은 인정받고자 패거리로 논공행상 타령이 터져 나오니 바울 사도는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살전5:12)을 알아주라고 했으랴! 두 손바닥이 맞아야 소리가 나거늘 십자가를 바라보며 참아야지. 양들이 죽을 때 목자는 눈물을 보이는데 목자가 양들 치다가 죽어도 물끄러미 목내밀고 내다보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구나! “아이고 정말 와이카노!” 그때도 “십자가로” 이해해야지.
평생을 목양 길에 헌신하고 은퇴하는 목사님이 얼마나 영광스럽게 보이는가? 떠나는 늙은 목자에게 재정장부 집어던지며 흥정하지 말라.
어떤 교회에선 원로목사 대우는 고사하고 다시는 교회당 근방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아니 4Km 근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는 소릴 들을 때 “얼씨구나 잘났어 잘났다!” 목사를 먹사로, 감투사로 밀어? 뭣 때문에 끝장에 그놈의 다혈질(quick temper) 성깔 뛰쳐나와 평소의 유감을 표출하는지? 사례비와 은퇴비의 돈 때문에 현대판 고려장 행사를 떠벌리는가? 은퇴목사가 산들 얼마나 산다고 돈 돈 돈 그 놈의 돈이 뭐길래? 제발 안면 몰수로 야박하게 하지 않으렴! 끝이 좋아야 다 좋지.
부친은 우시장에 가서 기른 소를 팔고 아무도 사가지 않은 깡패소를 값싸게 사오셨다. 주인과 머슴을 떠받아 다치게 하고 행패부리는 무서운 황소였다.
나는 중학생때 돼지, 닭, 토끼, 개, 염소도 돌보며 키운 일이 있었기에 그 사나운 소를 조심하며 풀과 여물도 주고 구유에 물도 길러다 주며 사귀었다.
그런데 가끔 소리를 지르며 뒷발질하고 행패를 부려 같이 있던 염소들은 마굿간 구석에 숨도 못 쉴 지경이 될 때도 있었다.
한번은 부친이 논갈이를 하시다가 둔 소의 쟁기를 잡고 “이랴”하며 논을 가는데 곁길로 가기에 “워!”하고 줄로 한번 쳤더니 갑자기 소는 뒤를 돌아 나에게 달려와 덤벼들려는데 간신히 피하여 논둑을 힘껏 기어올라 살았다.
그날 소외양간에 들어온 소에게 부친 모르게 “에이 주인 아들을 떠받으려는 못된 소 혼나봐라!” 소리치며 지게작대기로 여러 번 등짝과 몸통을 닥치는 대로 쳤더니 소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뛰었다.
그런 후 깡패 소는 나만 보면 몸을 흔들고 뒷발질을 하며 숨소리가 거칠었으나 큰소리치면 차츰 조용해졌고 예전보다 더욱 여물이나 물을 잘 날라주고 가깝게 하여 쓰다듬고 사귀니 매우 가까워졌다.
어언 2년이 지나 부친은 소를 백정에게 팔게 되었는데 소가 떠나가던 날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마구에서 내 앞을 지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는데 나도 모르게 애처로워 눈물이 핑 돌았다. 소도 사랑해 주니 눈물을 보이는데…!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이 퇴임하시는데 눈물 닦는 성도가 적을 때나 많을 때를 보며 깡패 소를 생각게 했다.
첫 목회지 도안교회(현 서머나교회)에서 신대원 1학년 신학생으로 14개월 목회하고 군에 입대할 때 그 주일 하다윗 선교사가 심영근 전도사의 인도로 찾아오셨기에 설교를 하셨는데 온 교인들이 흐느끼며 눈물흘리는 것을 보고 하다윗 선교사는 자기의 설교에 교인들이 은혜받아 우는 줄 알았는데 심 전도사는 한전도사가 입대한다고 해서 예배가 끝나도 울고 앉아있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하선교사는 나에게 다가와 “목자가 떠나면 양들이 웁니다!” 라고 격려하면서 혹시 군복무중 원주에 오게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다.
깡패소도 백정에게 끌려가며 눈물을 보였는데 목회자가 “십자가로” 목양하면 양들의 눈물을 빼게 하는구나!라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 후 목회에 철이 들 때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십자가로”죽도록 충성하고 목자장 예수따라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에 달려죽는 것이 승리요 부활이요 영광에로 오른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벧전5:2~4)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