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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뿌리 ④ - Commitment

가정회복-6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리한 분노의 뿌리들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 안에서 분노의 문을 여는 버튼을 발견한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으로 인해 이 버튼이 눌러질 때 하찮아 보이는 작은 문제로도 감정적인 폭발을 경험한다. 분노를 조절하는 훈련 중의 기초 단계가 바로 내 안에 존재하는 이 버튼을 찾아내는 일이다. 사람들마다 유달리 민감하거나 잘 상처받는 영역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의 버튼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회오리로 인해 또 다른 사람에게 생채기를 남기는 일을 줄여갈 수 있다.


그 분노의 뿌리 중 일반적인 것 중에 하나가 Commitment, 즉 상대가 현재의 관계에 얼마나 헌신되어 있는가이다. 많은 청년들이 나만 사랑해 줄 수 있는 배우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만 사랑해주는 남자를 찾는 한 자매에게 어떤 형제가 하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차라리 강아지를 키우시죠?” 나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은 이 자매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한 형제는 헌신이 두려운 족쇄이자 구속을 의미할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던 각자에게 다른 모양으로 헌신이라는 이슈가 자리하고 있다.


연애를 하는 커플들의 싸움 중 주된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든가, 나 아닌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나 여사친과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든가 하는 문제이다. 다른 누군가를 보고 헤벌레 웃네, 친구들하고 있으면 내 전화를 빨리 안 받거나 카톡 답장이 늦네 등등이 시빗거리가 된다.

모두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에 얼마나 집중하며 헌신되어 있는지를 확인해가는 과정이다.


요즘 결혼 서약서는 평생 몸매를 S 라인으로 가꾸겠습니다라는 문구들이 자리한다. 남편의 옆구리 살이 흘러넘치고, 숱이 적어진 아내가 뽀글뽀글 파마를 하는 날이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약속한다.

기쁘나 슬프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하나 아프나 평생을 곁에서 지키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산다는 약속은 왠지 한물 간 주례사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의 배우자가 내가 늙어 배가 축 쳐지고 눈자위가 내려앉아도 날 사랑해줄까 확인하고 싶다. 시댁과의 관계보다 아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편들어 주는지도 시험거리가 된다.

친구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귀가 시간이 지켜지는지 눈에 불을 켠다. 더더구나 젊은 부부들의 재정관리도 각자 다른 은행구좌를 소유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 문제가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각자 구좌를 가지고 있되 공동으로 생활에 들어가는 돈은 공평한 금액을 모아서 따로 더 한 구좌를 연다.

한쪽은 재정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깔끔하게 분리된 재정관리를 원하는 다른 한쪽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이다. 서로 돈을 어떻게 쓰던 간섭받을 필요가 없다는 편리함도 이유이지만, 어찌 보면 헤어질 때에 정리해야 할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뉘앙스를 준다. 사소한 말다툼처럼 보이지만 이런 문제들이 반복해서 불거지고 감정적인 폭발로 이어진다면 헌신에 대한 이슈가 그 뿌리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헌신이라는 문제는 내가 버림 받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편이 너무 말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부부가 있었다. 상담실을 찾아온 C씨는 남편이 무슨 일이 있는지 뭐가 고민인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는 것이 서운했다. 결혼 전에는 과묵해서 멋있어 보였던 남편이 이제는 답답하고 짜증났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자신한테는 나누질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로 인해 아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무는 남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들을 던졌다. 이 아내가 남편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분노의 뿌리가 다른 데 있음을 알게 된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다. 어린 나이에 혼자 남겨진 아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께서 고이 길러주셨지만 이 아이게는 버림받았던 기억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조차 자기 옆에 함께 할 수도, 자기를 원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자리했다.


남편이 조용해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면 자신에게서 감정적으로 멀어지고 있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남편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남편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부정적인 관심이 무관심보다는 나았던 것이다.

분노의 뿌리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픔일 때가 많다. 이 아픔에 대한 이해와 치유가 없으면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을 또 아프게 한다.


내가 당신 곁에 있겠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 계속 의심하고 확인한다. ‘내가 이렇게 해도 나를 안 떠나는지 볼까?’라고 시험한다. 그러다 곁에 있는 사람이 지치면 이 사람도 별 수 없구나. 다 똑같이 나를 떠날 생각만 하는구나라고 또 확신한다. 우리의 감정은 충격적이었던 작은 한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좋은 기억들, 내 곁을 지켰던 많은 사람들의 증거를 무시한다. 내가 부족해도 내 곁을 묵묵히 지키는 배우자, 나를 의지하는 자녀들, 밤낮을 내 걱정으로 보내시는 부모님, 나도 모르는 새 나를 받아주고 참아주고 기도해 주었던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감사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는 내 옆에 오래 머물 수 없었던 그 누군가가 훨씬 충격적이고 원망스럽게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 내가 모은 증거에 맞아 들어가는 한 사람의 무심한 말에 또 분노한다.


그래서 세상의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는다.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계속 의심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5)’라고 하신 변치 않는 사랑의 선포를 잊고 만다.

우리의 짧은 붕어 기억에 의존한 감정에 충실하느라 태초부터 존재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까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또 다른 송중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할 것 같은 환상 속의 태양의 후예를 찾느라 내 곁에 이미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잊히고 있다.

/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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