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강도야!” 옆에 한 이불 속에 잠자던 아래 동생 명도가 두렵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얼떨결에 들으니 부엌에서 “바스락, 땡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나머지 가만히 소리를 들으니 부엌을 뒤져서 무엇을 먹는 것 같았다. 약간 안심을 한 나는 불을 켜고 문을 열고 나가니 강도가 아니라 남루하게 옷을 입은 거지가 발견되었다. 그 때는 대학시절에 남녀동생들과 함께 얼마동안 자취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초가지붕 전세집이 홍도동 언덕 위에 외따로 있었으니 거지가 지나가다 찾아온 것이었다. 한 밤중에 남의 집 부엌에서 밥 뒤지는 것이 어쩐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저녁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을 갖고 그를 데리고 들어와 이왕이면 추운 날씨라서 방안에서 먹게 했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허겁지겁 다 먹어치웠다.
나는 그에게 이왕 들어왔으니 이불에 들어와 잠자고 가라고 했는데, 동생들은 나의 하는 처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큰 이불이라 우리 셋이 늘 같이 덮고 잤는데, 그 날 저녁은 우리가 잠든 후 그가 이불 속으로 내 옆에 끼어 들어와 함께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시간 전에 얼굴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오는 걸 보니 남자가 아니라 여자여서 깜짝 놀랐다. 조용히 과거를 물으니 집은 영등포이고 남자의 유혹에 빠져 같이 살았는데, 밥도 못하고 살림도 잘 못한다고 경상도 말로 “칠칠맞지 못해서” 쫓겨났다고 했다. 이제는 이렇게 이곳까지 오면서 이 집, 저 집 다니며 구걸하여 먹고 사는데, 군사혁명이 나서 거지를 잡아넣는다고 하여 주로 밤에 움직인다고 했다.
그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관찰해 보니 “오줄”이 없는 정신박약자임에 틀림없었다. 눈망울이 바로 박힌 사내라면 이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밥을 함께 먹고 나서 집주인이 이 일을 알고 매우 싫어하여 새 출발의 복음전도를 전하고 곧 보냈다. 그런데 전날 밤에 잠자리에서 몸이 가려워 여러 번 긁었고 더욱 가려워서 견딜 수 없어 옷을 벗고 속옷을 뒤집어 보니 통통하게 살찐 이가 여섯 마리 발견되었다. 벼룩과 빈대, 옴(itch)을 발병케 하는 이는 40년 전만해도 허다했다. ‘거지는 구걸해서 먹고 사는 신세이나 밤사이 내 몸에 이사 온 이 만은 살찌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 후로 거지는 왜 생기는지 거지의 영혼은 나사로처럼 구원을 받는지 등등 거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곤 했다.
독일의 신학자 슐라이엘 마허(Schuleier Macher)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거지 없는 사회로 만들어질 수 없는 한 우리가 거지에게 동전 한 푼 던지는 것을 아끼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거지나 노숙자 및 극빈자에 대해서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며, 저들의 구령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너무 가난하여 교회에도 나올 수 없고 복음을 외면한 온 세상의 영적 육적으로 굶주린 백성을 위한 전도는 어떻게 꽃피울 것인가?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회개한 전과자!
할렐루야! 존경하옵는 목사님! 그동안 존체건안 하옵신지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교회와 목사님 위에 늘 충만 하시옵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 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저는 전에 말씀드린대로 한 때 김태촌의 부하였던 불초소인 한인택입니다. 죄값으로 2년 옥고 후 출감하여 서울침례교회에서 목사님을 만난 후 말씀해 주신대로 예수님을 믿고 김태촌 형님과 단절한 후에도 어려울 때마다 그동안 여러 번 서울교회를 찾아가 목사님께 적잖은 부담을 드리게 된 것을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목사님, 그동안 교회출석을 하거나 한 번 찾아뵈옵고 인사를 올리려고 했사오나, 저는 간경화 증세로 인하여 몇 군데 병원신세를 져야했습니다. 몇 번이고 생사를 가늠하는 지경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가도 정신이 조금씩 들 때마다 지난날에 대한 참회와 침상을 적시는 눈물의 기도는 끊길 날이 없었습니다. 물론 목사님을 향한 고마움과 죄스러움에 대한 기도도 끊길 날이 없었습니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리오며 지난 날 한 번도 외면치 않으시고 주 안에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목사님께 큰 감사를 드리옵니다.
현재는 최근에 미아리 성가복지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정릉 1동에서 보증금 없는 월세 25만원하는 방에서 외래진료를 받으며 약만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투병생활을 통하여 병은 제법 호전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 술이나 먹고 형님 밑에서 방황할 때는 이러한 시험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마는 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저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생겨 매우 힘들었고 난감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충격을 받아 병이 더욱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 군데 입원을 오래 할 수가 없기에 몇 군데를 전전하며 입원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간경화가 심각했지만 배에 복수가 차지 않은 것이 매우 희망적이며, 퇴원해서도 음식 조절(식이요법)을 잘하고 안정을 취하게 되면 회복이 가능하여 운전 및 가벼운 일상생활 속에 직업에 종사할 수가 있다는 매우 희망적인 말을 의사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하오나 현시점에서 방세도 제대로 지불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음식조절을 하는 등의 안정을 취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난감하기만 합니다. 솔직히 현재는 하루 세 끼니를 채우는 일에도 난감할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또 다시 송구스러움을 무릎 쓰고 목사님께 서신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옵고, 주 안에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목사님, 한 생명을 살리는 셈 치시옵고 선처해 주셨으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저의 현재 상태로는 늦어도 6개월은 몸을 보호해야 회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드리는 저의 사정이오니, 매달에 한 번씩 당분간을 목사님 능력대로 교회적으로 도와주시던지 아니면 한두 번에 걸쳐 도움을 주셨으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죄하며, 용서를 빌 뿐입니다. 오직 주 안의 사랑으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빕니다. 건강이 회복되는 데로 운전 및 취직을 하면 저도 남들처럼 교화에 충실하며,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고자 현재도 최선을 다합니다. 목사님, 천하보다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해 주시지를 않으셨습니까? 희망을 갖고 건강을 회복하고 직업에 종사하여, 교회에 충실한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따뜻한 사랑의 선처를 부탁드리옵니다.
2004년 1월 5일 한인택 올림
/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