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人工知能) 즉 AI(Artificial Intellgence)는 표현 그대로 사람이 만든 지능이다. 지금까지 사전에도 AI라는 단어는 없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기계였기 때문에 사전에 명사가 실릴 시간이 채 없었다. 인공지능이란 기계가 이세돌 바둑기사를 이긴 이후부터 인간은 패배당했다는 자조(自嘲)스러운 한숨도 나왔다. 그런데 사람은 인공지능 기계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인간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SDF서울 디지털 포럼 2016년 기조연설에서 스튜어트 러셀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가 만드는 인공 지능 시스템은 능력이 많아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만들어 내고 발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인간이 원치 않는 것일 수 있다.”
러셀 교수는 손에 닿는 모든 게 금으로 바꿔 굶어 죽은 미다스왕의 이야기를 교훈 삶아 인공 지능 기계가 인류에게 긍정적인 도움도 주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정적인 해도 될 수 있다고 했으니 말하자면 새로운 무기, 대량 살상 무기 같은 문제다.
가령 가정용 AI로봇이 배고픈 아이에게 고기를 준다고 하여 산 고양이를 식재료로 선택한 사건이다. 로봇이 인간의 가치와 감정을 100% 이해할 수 없기에 이런 재난의 주역이 된 것이었다.
반대로 다른 기조 강연자 구글 창립자이자 구글 최초 자율 주행차 리더였던 세바스찬 스런은 인공지능의 밝은 미래를 강조했다. 기계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왔고 신체적 노동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은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계는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으니 낙관적으로 기계의 사용을 즐기라고 했다(2016.5.20. 국민일보 사람들).
이런 두 사람의 견해를 보면 인공지능 기계가 생산된 이후에 인간의 활용상의 문제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런데 인공 지능 연구자들이 한결같이 꼭 필요한 대전제에 무지한 것 같다. 그 전제가 무어이냐? 그 대답은 성경이 말하고 해석은 신학자가 하게 된다.
기계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것의 움직임은 작동(作動)이다. 작동이란 행동을 짓는다는 것이다. 기계에는 “생(生)”이란 말을 붙일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생명을 가진다. 사람은 생명적 존재다. 생명은 활동한다. “활동(活動)”이란 살았기에 움직이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것에는 윤리가 없다.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졌지만 인류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인류를 대변하는 위안의 말을 했고 또 알파고는 자신이 이기고도 아무런 기쁨이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사람에게는 “생”이란 단어가 항상 붙어 다닌다. 생활, 생명, 생가, 생월, 생업 등은 모두 사람의 일이다. 이중 한 개라도 기계가 취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계에는 일생(一生)이 없거니와 사람에게는 일생이 있다. 기계는 사람의 손에 의해 나왔고 사람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생령이 된 존재이다.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지만 기계에는 기능만 있다. 기계는 고장났다고 하고 사람은 병났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동대 글로벌 리더십학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이기 때문에 강령한 제어가 필요하다. 우선 인공지능이 간접적이로라도 윤리적 판단의 주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의사소통의 상대보다는 정밀한 판단을 수행하는 기능적 보조역할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기술의 독점과 소수의 악용을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다.”(2016.5.21. 국민일보 월드뷰)
/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