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십자가가 가진 상징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입니다. 기독교 테마의 양대 산맥은 갈보리십자가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찬송가에서 가장 많이 불러지는 테마를 찾아봐도 십자가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앞에는 그 누구도 면류관을 벗어 내려놓고 엎드려 찬양드릴 수밖에 없습니다(계5:8).
성경에는 어린양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관점은 희생입니다. 어린양은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희생적인 동물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린양은 가장 온순하며, 신뢰할 수 있으며,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특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희생 제물로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 관점은 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 이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으로서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고난과 갈보리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으심이 어린양의 희생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어린양의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네 장의 귀중한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어린양의 그림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어린양을 예비하신 모리아 산의 어린양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어린양의 그림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을 애굽에서 400년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장자들의 생명을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어린양입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라.”
세 번째, 어린양의 그림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침례요한 앞에 침례를 받기 위해 나오시는 주님을 보고 침례요한이 증거 한 어린양입니다.
네 번째, 어린양의 그림입니다. 요한계시록 5:6,14절에서 네 생물들과 24장로들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어린양입니다.
첫 번째 그림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모리아 산에 이미 예비 된 어린양 사건은 심각한 감정적인 부분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삭이란?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변할 수 없는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그 명령을 거절할 충분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을 향해갑니다. 그 때 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이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이 답변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 희생은 언제나 최고여야하고 언제든지 드려야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요구하실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계심을 인정하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 약속을 지키시며 우리 먼저 준비하고 계신 분이심을 보여주는 어린양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서 400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동안 노예로 살아 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해방시키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바로와 그의 백성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면서 마지막 재앙인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치시던 공포의 밤,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집집마다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 밤 여호와께서 재앙의 천사들을 보내실 때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I will pass over you.)”하나님의 구원은 오로지 어린양의 피에 있으며 백성들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린양의 죽음과 양이 흘린 피에 있습니다. 400년의 종살이에서 해방은 오직 어린양의 죽음과 피의 흔적이 있는 히브리민족 가정만 구원 받았습니다.
세 번째, 요한복음 1장29절에서 침례요한이 증거 한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어린 속죄의 양이 갈보리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고난의 십자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친히 보혈을 흘려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을 대신해서 준비된 어린양, 풀무불과 같은 고난의 땅 애굽에서 모세와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해방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어린양, 세상 죄를 지시고 갈보리 십자가위에서 보혈을 흘려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이제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그려진 하나님의 어린양은 최후의 승리와 영원히 그의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장로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 그 어린양이 나아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계 5:5~7) 아멘!
/ 이정일 목사 청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