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 비전, 데스티니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어떻게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았는가? 때론 직업찾기, 적성발견하기 정도쯤으로 생각하고 학교 졸업이후 이력서를 넣으며 취업여부로 부르심, 비전, 데스티니를 이뤘다고 자부하고는 있진 않는가? 혹은 반대로 아직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막연한 미래로 나아가는 크리스천이나 불신자에게 풀어야할 데스티니(Destiny)의 숙제는 동일하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답답한 나머지 점과 사주, 샤머니즘을 인생 풀이집로 여기며 요령도 피워본다.
나를 향한 데스티니: 데스티니 메이커가 돼라
데스티니의 본질은 “사람이 되는 것”. 즉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데스티니의 본질이다. 끊임없이 예수 닮은 사람 되기를 열망하고 선택할 때 구체적인 인생의 길들은 하나님이 열어가신다. 이것이 데스티니의 길이다. 이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면 복잡한 선택들이 훨씬 단순해진다. 인문학 강좌와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요즘 우리는 그 분위기에 휩쓸릴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성경읽기와 예배의 삶의 우선순위를 두며 당신의 데스티니 찾기로 돌입해보자. 점점 당신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선택을 하고 나서 하나님이 어떤 미소를 지으시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그런 데스티니의 선택이기를 응원한다. 저자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1980년대, 명문대학교를 입학했지만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던 대학과 학우의 죽음 등을 통해 평소 추구하던 행복에 대한 허무를 느끼며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렸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그는 경쟁 외에 자기 인생에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주는 다른 길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을 위한 길이 있다”는 복음과 함께 비규격 인생이 시작됐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인생의 길들이 규격화된 인생 속에 묻혀버리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데스티니에 큰 관심이 있고 그것을 이루는데 큰 열정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나의 데스티니’를 이루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과연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적인 인생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반문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데스티니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데스티니에 몰두한다. 요나단은 왕이 돼야 하는 다윗의 데스티니, 모르드개는 민족을 구원해야 할 에스더의 데스티니에 몰두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온 인류의 데스티니에 몰두하셨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데스티니가 이뤄지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데스티니 메이커다. 여러 민족과 나라들 가운데 데스티니를 선포하고 돕는 데스티니 메이커가 되게 하셨으니까….
시대적, 공동체적 데스티니
나오미와 룻의 관계에서 ‘그 한사람’을 주목해보자. 고향 길로 가는 길에 과부가 된 나오미를 따르는 것은 룻뿐이다. 자살을 생각해 볼 법한 상황이었지만 나오미에게 감사한 것은 이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의지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나오미에게 룻은 ‘그 한사람’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절망으로 내 몰리는 이유는 내 안에 ‘그 한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오갈 데 없는 나오미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께서 사셨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그 한사람이 되어주기 위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결국 데스티니는 한 소망 안에서의 ‘부르심’이다. 물론 각 사람 각 민족은 그들만의 독특한 데스티니가 있지만 진짜 데스티니의 비밀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함께 이뤄가는 하나의 데스티니다. 연합을 통해 우리의 데스티니가 비로소 완성된다. 저 형제가 아니고서는 나의 데스티니가 완성되지 못한다. 넓게는 민족과 나라, 예를 들어 일본이 없이는 한국의 데스티니가 완성되지 못한다. 데스티니는 공동체적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성 곧 서사시가 있다. 이 서사시는 각 시대마다 배경이 되는 ‘무대’가 있다. 이 무대에서 사람들이 데스티니를 전개된다. 우리는 그래서 이 기대와 무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의 무대는 무엇이며 우리가 싸워할 것은 무엇일까? 요즘 한국교회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시국선언을 하며 기도의 자리로 모이자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신에 빠지고 분별력을 잃은 지도자 앞에 크리스천은 각 처소에서 시국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일과 더불어 데스티니의 메이커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 일 것이다.
/ 이한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