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동네 구두수선공을 알게 된 것은 20여년 전으로 돌아간다. 유명회사의 (브랜드)가 있는 가방 끈을 고쳐달라고 내밀었더니 자기 전공분야기 아니라 하면서 일언지하에 수선거절을 당한 사건으로 인해 그를 알게 되었다. 자기는 구두수선공이지 가방수선공은 아니라서 가방을 잘못 고치면 어쩌나 생각하는 직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까짓 대강 고쳐주고 수수료 받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구두수선에도 전공 버전공이 있다는 철학이었다.
이번에는 등산용 막가방의 손잡이가 떨어졌기에 이것을 큰 바늘로 쿡쿡 박아달라 했더니 아무 말도 없이 튼튼히 박아 주는 것이었다. 마침 신고 갔던 구두도 닦아 주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보통 때 그는 나의 구두를 광내주고도 일체 수수료를 한사코 사양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짐짓 내 마음이 꼭 수수료를 주고 싶어서 지갑을 꺼내자 그는 목사님과 자기 사이엔 돈이 오고가면 안 되는 관계라고 극구 또 거절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지갑을 다시 주어 넣었다. 멍하니 좁은 구두방 박스 안에 앉아 있노라니 어떤 청년이 구두가 발을 조이며 불편하니 구두의 좌우를 좀 넓혀 달라는 주문을 해 왔다.
그러면서 이 청년은 그게 아버지 구두인데 아버지가 자기에게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두수선공은 청년에게 그 구두를 신어보라고 한 뒤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그냥 가지고 가라고 했다. 청년은 수선비는 얼마든지 드릴 테니 거의 사정하다 싶이 고쳐 달라고 했는데도 이 수선공은 수선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말했다 : 이 구두는 고쳐야 할 구두가 아니라는 것. 다시 손을 보면 이 좋은 고가의 구두를 망친다는 것. 고치지 않고 편하게 신는 방법은 두꺼운 양말을 신은 채 이 구두를 2,3일만 신고 다니면 저절로 광이 넓어지고 편한 신이 된다는 것. 구두수선공은 굳이 마다하고 청년을 그의 구두를 든 채 내보내었다.
청년이 뒤돌아간 뒤 구두수선공이 툭 뱉는 한마디 말이 내 가슴을 찡하고 울렸다. “내 돈이 따로 있어요” 지금 청년의 구두를 억지로 고쳐주고 받는 돈은 일종의 사기 친 돈이라고 했다. 안 고치고도 잘 신을 수 있는 신을 왜 돈 들여 고치느냐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구두수선공에게는 한 푼이라도 수입될 것을 짐짓 거절한 것이었다. 그의 말속에는 정당한 돈이 아니면 자기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돈은 내가 정당히 수고하고 취득한 것이라는 것이다. 내 돈을 취하지 않고 남의 돈을 취하는 것은 도적이라고 했다. 지금 나라 안에는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먹다가 고관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가을 풍경을 우리는 보고 있다.
전직 총리였던 이완구씨, 유명한 모래시계 검사와 도지사인 홍준표씨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현재라 더더욱 동네구두수선공 (홍씨)의 “내 돈이 따로 있다“는 말은 금언중의 금언 같았다. 남의 돈을 왜 먹지? 자기 돈이나 먹지. 막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구두수선공의 경제철학을 모두 좀 배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권혁봉 목사